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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의 종말

서양현 2009. 2. 13. 13:22

나는 연회장을 나와 위층으로 올라가서 리틀록에 있는 아버지의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드루 컴퍼리스 박사는 아버지가 심각한 뇌졸증으로 쓰러져 구급차로 성 빈센트 병원에 실려 왔으며, 혼수 상태로 집중치료실에 누워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지금 당장 오셔야겠습니다." 하고 드루는 말했다. 나는 빌에게 소식을 알리고 옷가지를 꾸렸다. 몇 시간도 지나기 전에 나는 첼시와 남동생 토니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아칸소로 날아가고 있었다. 길고도 슬픈 여행이었다.

 그날 저녁 리틀록에 착륙한 것도, 병원으로 달려간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집줄 치료실 밖에서 나를 맞아 주었다. 어머니는 수척한 얼굴에 근심이 잔뜩 서려 있었지만, 우리를 보고 한시름 놓은듯 했다.  컴퍼리스 박사는 아버지가 회복불능의 깊은 혼수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우리가 아버지를 볼수는 있었지만, 아버지가 우리를 알아볼지는 의심스러웠다. 처음엔 첼시를 할아버지한테 데려가는게 걱정되었지만, 첼시가 할아버지를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첼시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따르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었다. 집중치료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평온해 보였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의사들이 아버지의 손상된 뇌를 수술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10년 전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았을 때처럼 촉수같은 튜브와 배액관과 모니터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인공호흡기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숨을 쉬고 있었지만 침대 옆에는 점적장치와 모니터가 몇대 있을 뿐이었다. 첼시와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나는 아버지가  다시 눈을 뜨고 내 손을 잡아줄지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에 매달려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첼시도 몇시간 동안이나 할아버지 곁에 앉아서 말을 걸었다. 첼시는 할아버지의 상태에 심란해진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첼시가 이 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날 밤늦게 첫째 남동생 휴가 마이애미에서 도착했다. 휴는 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을 회고하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옛날에 아버지를 화나게 했던 노래를 많이 불렀다. 아버지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남동생들의 안목-아니, 안목이 없음-에 대해 자주 잔소리를 했다. 아버지는 특히 「프린스톤」(1960년대 초반에 ABC-TV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주제가를 경멸했다. 그래서 휴와 토니는 아버지의 침대 양쪽에 서서,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아버지가 "그 잡음좀 꺼!"라고 고함을 지르기를 바라면서 그 노래를 불렀다. 그날밤 아버지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을까? 그렇다는 것을 아버지가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당신의 병상을 지킨 것은 알았으리라 믿고 싶다.                -  힐러리 로댐 클린턴 살아있는 역사 -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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