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
서문
사도 바울의 서신서인 갈라디아서는 총 6장 149절 3,098 단어 (KJV)로 이루어 졌다. 갈라디아서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1, 2장으로 개인적인 내용이며, 둘째는 3, 4장으로 교리적인 내용이고,
셋째는 5, 6장으로 실행적인 내용이다.
"갈라디아"란 말은 "고울(Gaul) 사람들의 땅"이란 의미이다. 이 땅에 대한 견해 차이들은 상당하지만 크게 논의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갈라디아"의 북쪽과 남쪽지역에는 실제로 "고울인"(프랑스인)이 살았다. 로마령인 갈라디아 지방은 B.C. 25년에 세워졌으며, 바울이 첫 번째 선교 여행 때 방문했던 안티옥, 이코니움, 루스트라, 터베 (행 13, 14장)를 포함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켈트족과도 가까운데, 그들의 조상은 영국에서도 발견된다. 프랑스와 롬바르드에서 발견되는 유럽의 "갈리오"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갈라디아"로 불렸다.
월리엄스 (주석, 1949)는 고울인들이 감정적이고 변덕이 심하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당신은 이같은 "인종적 차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실 우리는 들어 본 적이 있다. 시저는 고울 사람들이 변덕스럽고 변화를 좋아해서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저가 실수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인종편견"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쨌든 당신이 그들을 경험해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알포드는 티에리를 인용하여, 이 고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변덕스럽고, 자랑하기 좋아하며, 자주 다툰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민족이 다 그렇지 않은가?
갈라디아서의 기록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쓰여진 시기는 A.D. 51년에서 A.D. 58년으로 다양하게 추측된다. 사도행전 15:351이 가장 가능성 있는 시기이며, 그때는 A.D. 51년경이다. 갈라디아서 2장으로 봐서 본 서신은 분명히 예루살렘 회의 이후에 기록되었다. 또한 사도행전 9장의 사건(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에 사울이었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일)의 있은 지 14년 이상 경과해서 기록되었다. 만일 바울이 A.D. 36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지 3년 후)에 구원받았다면, A.D. 51년에 갈라디아서를 썼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갈라디아서 1:182의 3년을 갈라디아서 2:13의 14년에 합친다면) A.D. 54년에 기록했을 것이다.
해리슨 박사 (위클리프 주석, p.1283)는 A.D. 53년으로 잡고 있다. 알포드는 갈라디아서 4:134, 165을 바울이 이미 이 교회들을 두번 이상 다녀왔다는 증거로 인용하지만, 본문은 바울이 그곳을 한 번 방문했음을 보여줄 뿐이다. 알포드는 그의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 "처음에"를 "이전에"로 바꿔야만 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것은 사사로운 해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신학을 입증하기 위해 본문을 변개시키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식 성경 해석, 1996, 말씀보존학회 간>을 참조하라.) 더멜로우는 A.D. 55-56년으로 잡고, 스코필드는 분명하게 A.D. 60년으로 잡고 있다. 코니베어와 하우슨은 A.D. 57-58년으로 잡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부문에서 독특하다.
1.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직접 기록했다 (갈 6:116). 다른 편지들에서는 대필자를 사용하고, 마지막 안부 인사만 자필로 기록하곤 했다.
2. 갈라디아 교회들 (갈 1:27)외에는 어떤 교회도 언급되지 않는다.
3. 아무도 "성도"(엡 1:18)나 "하나님 안에" (살전 1:19) 있다거나, "하나님의" (고전 1:210)교회라고 불리지 않는다.
이 세 가지 특징들 때문에, 본 서신서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하는 구절도 볼 수가 있다 (갈 3:411; 5:412).
로마서는 사람이 구원받을 때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갈라디아서는 사람이 구원받은 이후에도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로마서는 사도행전 15:113의 이단들을 반박하는 반면, 갈라디아서는 사도행전 15:514에 처음 나왔던 카톨릭, 제 칠일 안식교, 그 외 알미니안주의자들의 교리에 대해 명백하게 답변하고 있다.
어떤 유명한 주석가들도 이 책의 위대한 진리들을 감히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1:8-915에서 저주를 하고 있는 원수들과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상 어떤 시기, 어느 나라에서도 항상 다수였다. "주석가"들은 오직 자신의 책이 잘 팔리는 것이 관심사항이므로, 우리는 주석가들이 갈라디아서 1:8, 9와 3:1016, 5:1417을 설명하고 적용하는 대신 "필수적인 복음의 위대한 진리들과 연관하여" "교리적 내용"에서 "신학적으로"만 취급하는 것을 보고 놀랄 필요가 없다. 그들은 헬라어 문법을 들어 성경 본문을 논박하는 데는 열을 올리지만 정작 독자들에게 진리를 제공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입을 다물고 슬쩍 넘어간다. 월리엄스, 클라크, 더멜로우,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 벌링거, 헉스터블(<강단주석>)의 설교는 <킹제임스 성경>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자세히 논박하며, 왜 자신들의 견해가 성경보다 우월한지를 말하는 것뿐이다. 사람이 이단을 배격하기 위해 하나님의 권위를 고치려든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런 어리석은 행동으로 하나님을 우롱하려는 것인가? (갈 6:718)
- 바울과 바나바도 안티옥에 머물면서 많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전파하니라. [본문으로]
- 그리고 나서 삼 년 후에 내가 베드로를 보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 간을 지냈으며 [본문으로]
- 그리고 나서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디도도 데리고 갔느니라. [본문으로]
- 너희는 내가 처음에 육체의 연약함 중에도 어떻게 너희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는지 아느니라. [본문으로]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함으로써 너희의 원수가 되었느냐? [본문으로]
- 내가 내 손으로 너희에게 얼마나 큰 글자들을 썼는지 보라. [본문으로]
-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는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편지하노니, [본문으로]
-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본문으로]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들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너희에게 있기를 바라노라. [본문으로]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각처에서 우리 주, 즉 그들과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편지하노니, [본문으로]
- 너희가 그처럼 많은 고통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그것이 헛된 것이더냐? [본문으로]
- 율법으로 의롭게 된 너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무용하게 되고 은혜로부터는 떨어져 나갔느니라. [본문으로]
- 유대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형제들을 가르치며 말하기를 '너희가 모세의 율례에 따라 할례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노라.'고 하더라. [본문으로]
- 그러나 바리새파에서 믿는 몇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그들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니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권고하라.'고 하더라. [본문으로]
-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같이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본문으로]
- 율법의 행위로 난 자들은 누구든지 저주 아래 있느니라. 기록되기를 '행하도록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해서 행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저주를 받느니라.'고 하였음이라. [본문으로]
- 온 율법이 한 마디 말, 즉 이 말로 이루어졌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 [본문으로]
-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