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현 2009. 11. 19. 19:32

"현대의 과학적 접근법" (20세기에 흔히 쓰는 용어)으로 보자면,

거리 설교자들과 복음전도자들과 부흥사들은

몇가지 이상한 기적을 행함으로써

진화를 이기고 살아 남았다가 니체와 함게

죽어버린 고대의 "하나님"을 다시 불러 들이는

일종의 선사 시대의 괴물로 여겨지고 있다.

 

현대과학의 "신"은 우주를 지탱하고 지지하고 있는

전자기장이다. 이것이 B.C. 500-300년의 모든 헬라의

자연주의자들의 신이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런

싸늘한 설명을 환영한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하나님은

부드럽고 조용하며 기계적인 신으로서 그 신은 자연의 섭리에

간섭할 수 없으며, 간섭할 수 있다해도 간섭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신에게는 포효하는 거리설교자들이나 강단을 뒤흔드는

복음 전도자들이나 성경을 펼쳐드는 증인들이 필요치 않다.

 

그런 신은 자연에게 분명하게 계시가 되어 있기 때문에

기록된 계시 같은 것은 불필요하게 된다.

 

이런 B.C. 4세기의 거짓 속임수를 어느 시인이 쓴 다음의 시가

아주 훌륭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나는 나의 믿음을 소리칠 필요가 없다네. 즉 별들, 나무들,

잔디가 유창하게 말하고 있으며, 작은 산들이 무언중에

침묵하고 있다해도 이들은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네!"

 

별들과 나무들과 잔디와 작은 산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와는 직접적이고도 고의적이며 의도적인 모순을 보인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시며

자신의 죄들과 자기 의에 대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로는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주장하는 사름들은

 

"무언의 작은 산들"과 "침묵하는 별들"은

그들 앞에 불못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상황이든 자연을 연구해서

이사야 64장 6절 (우리는 다 불결한 것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걸레 같으며, 또 우리는 다 잎사귀처럼 시들며,

우리의 죄악은 바람처럼 우리를 옮겨갔다)을

배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연이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그분은 전능하신 창조주라는 사실뿐이다.

 

자아의 지식은 창조주께서 기록된 형태로나 입으로

언급하신 것에 나타난 직접적인 계시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높인다.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고 말한 것은

자기 자신을 연구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을 분석해 보고, 자신을 개발하라는 의미였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즉각 자신을 버리고

자연과는 다른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 피하기 때문이다.

 

  잠언 (피터 럭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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