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경 (Antilegomena)에 관해 말할 때는
이 책들이 한 배교자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논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예를들면 디오니시우스 (오리겐 이후 등장함)는 자기와 오리겐이
전천년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계시록에서 사도적 권위를
없애버리려고 애썼다.
가이우스 (A.D. 213)도 자기가 후천년주의자라고 해서 마찬가지로
계시록을 거부했다.
요한이서와 삼서를 반대경 속에 집어넣은 사람은 유세비우스와 오리겐이었다.
오리겐과 유세비우스는 신구약 성경 그 어떤 것으로 판단해 봐도 전혀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못된다.
그들은 정경에 관해 논의함에 있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나
어거스틴을 제와하고는 가장 형편없는 원문비평학자였던 것이다.
알로기와 에피니우스가 신약성경의 책들을 논할 때면 이런 종류의
학자들의 노선을 따르고 마는 것이다.
유세비우스는 계시록의 저자가 누구인가를 논하는데 있어 몹시 주저하였는데
이는 이 책이 사도가 기록한 분명한 증거가 있긴 하나 자신은 오리겐과
콘스탄틴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이 책을 거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파피아스 (A.D. 260-340)를 핑계로 대는 것이다.
파피아스는 요한 계시록은 사도요한이 아니라 요한이라고 불렸던
다른 장로가 썼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오리겐이 카이사랴에 파괴적 비평학파를 새운 후에 (A.D. 216-222)
계시록은 시리아 페쉬타 성경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리겐이 계시록을 "의심스럽다"고 할 때 그가 외경은 영감을 받은 책이며
어린이를 위한 신앙교육은 쥬디스 (Judith)와 토빗 (Tobit)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당신은 잊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고대의 권위자를 어떻게 신뢰하란 말인가?
니콜즈는 말하기를 히브리서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의해
어떤 의미에서는 바울의 작품일 것이라고 간주되었다고 했다.
히브리서가 반대경 목록에 끼어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는
오리겐이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히브리서를 성경의 정경에
받아들인 것을 다른 교회들이 비난하였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다른 교회들이 도대체 어떤 교회들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