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현 2010. 3. 2. 11:38

제 4장 불타는 용광로

 

시몬 베드로는 고난에 있어 우리의 본이 되신

분은 우리가 따라야 할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시어,  너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죄 없으신 그분은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에 익숙한" 분이시다 (사53:3).

 

그는 사람들에게서 멸시받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에 익숙한 사람이라. 우리가 우리의 얼굴을 그로부터 숨긴 것같이 그는 멸시받았고,

우리는 그를 존중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분을 가장 잘 따랐던 사람 (딤전 1:16)

 

그러나 내가 자비를 입은 것은 이 때문이니,

곧 먼저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셔서

후에 그를 믿고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통을 (골 1:24)

 

이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나의 고난들을 기뻐하고,

또 그리스도가 고통받으신 이후에 있는 것을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에 채우노라. 

 

채워야 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구원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분의 목적을 보이셨다 (행 9:16).

 

그가 나의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큰 일들로 고통을 받을 것인가를 내가 그에게 보여 주겠노라."고 하시니

 

그것은 고난의 사도가 되는 것이었다 (고후 11:23-28).

 

그들이 그리스도의 종이냐? (내가 어리석은 자같이 말하지만) 나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더 많이 수고하였고, 매도 헤아릴 수 없이 맞았고, 더 빈번히 감옥에 갇혔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당하였으니 유대인들로부터 사십에 하나 뺀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세 번 몽둥이로 맞았으며, 한 번은 돌로 맞았고,

세 번 파선을 당하였는데 하루 밤과 낮을 깊은 바다에서 보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는 중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으로부터의 위험과

이방인들로부터의 위험과 성읍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으며
수고하고 애쓰며, 자주 깨어 있고, 배고프며 목마르고, 자주 금식하며, 춥고 헐벗었노라.

그 외부의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나에게 밀려드는 것은 모든 교회에 관한 염려라.

어떤 현대 신학자나 그 어떤 종류의 신앙을 고백하는

학자일지라도 신약성경의 믿음의 강령인 고난을

없애버리거나 축소시킬 수는 없다.

사도들은 고난을 받았다 (행 12:1-5).

 

그 무렵에 헤롯왕이 교회에서 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치더니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라.

그 일이 유대인들을 기쁘게 한 것을 알고서 그가 베드로도 잡고자 하더라.

(그 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 그가 베드로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네 조의 병사들을 붙여 교대로 지키게 하니,

이스터가 지나면 그를 백성들 앞에 끌어낼 의도였더라.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으나 교회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더라.

 

사도들은 그들을 따르는 자들에게 고난 중에 참으라고

격려하였다 (벧전 2:19-24).

 

이는 누가 억울하게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을 의식하여 슬픔을 참으면 그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너희의 잘못들로 인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영광이 있겠느냐?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고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이 되느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시어,

너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짓지도 아니하셨고 그 입에는 간사함도 없으셨으며,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셨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아니하셨으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자신을 의탁하셨느니라.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

 

 

군사로서 고난을 견뎌 내라고도 격려하였다 (딤후 2:3-4).

 

그런즉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뎌내라.
전쟁에 임하는 자는 아무도 이생의 일들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자기를 군사로 뽑은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수많은 "전투" (불시험)에서 "피 흘리는 고난" 끝에 많은 상처를

몸에 지닌 고참 군인이 신약 성도들이 따라야 할 본이었으며(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처럼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

 

이 고참병은 완전무장을 하도록 성도들을 권면하고 있다.

이와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은 꼭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요즘 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이나 교회사가들은 한결같이

바울을 그저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자기들의 친구인 양 생각하고

그런 이미지에 맞게 바울을 왜곡시키는 것이 유행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울처럼 거리에서 설교도 하지 않고

소요나 재판에 연루되지도 않고

왕들 앞에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복음을 전하지도 않고

공개적으로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그저 둘러 모여 앉어 케익이나 먹고 커피나 마신다.

바울이 자기 동시대의 희랍 철학자들을(행 17:18)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어떤 철학자들은 그를 만나 보고 나서 말하기를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이방 신들을 전하는 자 같다."라고도 하니

이는 그가 예수와 부활을 그들에게 전파하였기 때문이라.

 

몹시 꾸짖으면서 그들을 미신적 우상 숭배자라고 (행 17:22)

 

그러므로 바울이 마르스 언덕 한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가 보니 너희는 매사에 너무나 미신적이니라.

야단친 것을 보아 로버트슨, 앤더슨, 예거, 트렌치,

케네스 웨스트, 스파이로 조다이에트,

홀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음이 분명하다.

증인(witness)이란 단어는 마르튀레오를 번역한 것으로 이것을 음역하면

"MARTYR" 즉 순교자인 것이다.

최초의 신약 순교자였던 스테판은 스테파노스 (Crown면류관)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하나님의 증인은 그들의 삶이 야기시키는 "분란" (행 21:27-32)과

 

그 칠 일이 거의 끝날 무렵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그를 보고 온 무리를 선동하여 그를 붙잡고서
외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거역하여

모든 사람에게 가르친 자인데 거기다가 헬라인들까지 성전으로 데려와서

이 성소를 더럽혔느니라."고 하더라.
(이는 그들이 앞서 성읍에서 에베소 사람 트로피모가

바울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기에 바울이 그를 성전으로 데리고 온 줄로 짐작함이라.)

온 성읍이 소동하니 사람들이 몰려 와서 바울을 붙들어 성전 밖으로 끌어내니 즉시 문이 닫히더라.
한편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할 무렵 예루살렘에 소요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군대의 사령관에게 들리니 그가 즉시 병사들과 백부장들을 대동하고

그들에게 달려오니 그들이 사령관과 병사들을 보고 바울을 치던 것을 그치더라.

 

그들의 잔인한 죽음으로 (벧후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때가 임박했음을 앎이라.

 

 

특징지워지는 것이지 "서로 사랑한다"던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성경 번역본들을

용납하는 행위로 특징지워지지 않는다.

이들은 박해하에서도 용기백배하였다 (행 7:59).

 

그들이 스테판을 돌로 치니, 그가 하나님을 부르며 말하기를 "주 예수여, 나의 영을 받아 주소서." 하고

 

이들은 담대하게 외쳤을 뿐 "학자인 체하는 해석"이나

"원어 독해 능력"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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