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현 2010. 3. 5. 14:06

우리의 충성에는 분리가 없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 제2계명으로 대체될 수는 없다 (마 22:39).

 

마 22:39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비록 이 이웃이 순교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다 (마 22:37-38)

 

마 22: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8 이것이 첫째며 큰 계명이니라.

 

충성이 분리되면 두 가지 권위가 세워지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트렌트 공회 (1546년)가 모든 카톨릭 신자들에게 진리라고 가르치면서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위협하는 그것이다.

모든 교황, 추기경, 주교, 수사, 수녀, 사제 등 카톨릭 조직에 가담한

"성직" 그룹에 따르면 카톨릭 교회의 공회가 정한 모든 규례는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과 동일한 구속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카톨릭 신자는 매우 무지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기 교회가 표방하고 믿고 있는 그것을 공개적으로 알리기를

두려워하는 거짓말쟁이일 것이다.

이 사실은 전 세계 모든 공산당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향후 1500년 간의 지역교회의 흐름을 결정짓는 세 가지의 성경 이슈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열번의 박해시기였다 (A.D. 81-313년).

 

박해는 아주 특이한 상황을 야기시킨다.

순교당한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지나친 숭앙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순교자들을  사도적으로 계승했다던가 안수를 받았다던가

함으로써 순교자와 관련이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이면 그가 아무리

엉터리일지라도 존경과 경배를 받을 수 있게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로마의 교황들은 자신들이 교회국가에 저항하기 위해 고난받고 피흘리고

죽은 바울과 같은 순교자들과 닮았다고 주장하므로써 역사상 최초로

바울적 강박관념을 내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배교한 교황들은 합스부르크나 튜더 왕조가 순교자를 닮지 않은

만큼이나 순교자를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다.

후에 시프리안에 의해 제사장 (사제)이라고 불린 감독이나 장로들은 곧이어

작은 신들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와같은 경향과 더불어 제2의 문제가 발생하였으니 그것은 박해시

신앙을 부인한 영적지도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비도덕적이고 세상적인 영적 지도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 문제로 성경대로 믿는 몇 그룹은 위조된 헬라어

"이그나티우스 서신"에 따라 스스로를 "카톨릭"이라고 불렀던 모임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이 그룹은 몬타니스트, 노바티안, 도나티스트라고 불렸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차후 더 언급하도록 하겠다.

이그나티우스가 무심코 사용했던 한 단어 카톨릭이

-실은 이 용어를 그가 사용했는지 조차도 의심스럽다.

위조된 서신에만 그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폴리캅이 순교하기 전에 폴리캅에 의해 "카톨릭적 교회"라는

표현으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도 로마 카톨릭 교회가 300년이 지난 후에

내세운 약간의 전설적인 이야기에 나와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약간이란 단어는 이런데다 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전설이기 때문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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