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현 2010. 3. 8. 11:05

코모더스 황제는  A.D. 180년에서 A.D. 192년까지 통치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박해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자신의 확신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에게 교회를 내버려두도록

설득한 그의 첩들 중 한 여인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폴로니우스라고 하는 로마의 한 원로원 의원이

그리스도를 고백하였다는 이유로 코모더스 치리 기간 중 처형당했다.

셉티무스 세베루스는 사탄의 의자에 A.D. 193-211년 까지 앉아 다스렸다.

그 자신은 박해에 적극 나서지는 않았으나 박해자들을 내버려 두고

막지 않았다.

그가 A.D. 202년 기독교 전파를 막기 위해 제정한 법이 A.D. 211년경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와 많은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때 오리겐의 아버지 레오니데스는 목베임을 당했고 노예였던 펠리시터스,

귀족부인이었던 페르페투아, 처녀였던 폰타미아에나, 그녀의 사형

집행인이었던 바실리데스 그리고 수십 명의 몬타니스트 등 수많은 순교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말하기를 "많은 순교자들이 매일 타 죽었고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목베임을 당했다"고 했다.

 

그 다음에 있었던 로마의 두 통치자는 칼리큘라 (Caracalla, A.D. 211-217)와

헬리오가 발루스 (Heliogabalus, A.D. 218-222)였는데 둘 다 나약하고

변변찮은 통치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기독교를 용납했다.

칼리큘라는 동양의 신비술에 심취했던 여자 마술사들과 철학자들에

둘러 싸여 지냈다.

 

로마의 시민권이 모든 지역에까지 확산되어 사회적 신분이 사실상 무의미해져

가던 시절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처럼 그렇게 냉냉한 대접을 받지 않게

되었고 거의 모든 사회 계층에 파고들게 되었다.

 

그 당시까지 약 200년 간은 기독교로 개종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예이거나

하녀 가정부이거나 군인 선원 부두 노동자 종 혹은 몸종들이었다.

 

칼리큘라는 마크리누스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마크리누스는 14개월 간

황제로 있다가 줄리아 모에사가 공격해 왔을 때 보좌에서 물러났다.

 

줄리아 모에사는 그의 뒤를 이어 헬리오가발루스를 내세웠는데

이 자는 유약하고 방탕했던 인물로 철저한 바알신앙 전통에 따른

태양숭배자였다.

 

그래서 이 자는 퍼가모를 거쳐 바빌론으로부터 유입된 고대 로마의

신비 종교와 기독교 그리고 유대교까지를 통합하려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펼쳤다.

그는 에데사로부터 로마의 검은 돌을 가져와 사람들로 거기에 입맞추도록

했는데 얼마 후 로마군이 그를 축출하고 알렉산더 세베루스를

사탄의 의자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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