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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서문

서양현 2010. 7. 26. 19:54

에스라서는 전체 10장, 280절, 7,441단어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약 B.C. 450-444년경에 기록되었으며, 유다의 70년 바빌론 포로기간 중에서 약 52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페르시아가 바빌론 제국을 대신하게 되었으므로 당시의 페르시아 왕은 바빌론의 왕으로 불린다.

에스라서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해 예레미야 30:10, 신명기 30:1-5, 열왕기상 8:47-49에서 언급하고 있는 약속들이 어떻게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런 관점은 모든 카톨릭 신학자들, 이슬람교도들, 후천년주의 개신교도들의 입지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들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면 앞으로 온전히 성취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사야 11:11의 말씀으로 미래에 분명히 성취될텐데 이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제거하고 (렘 33:20-26) 그 자리를 로마 카톨릭 교권 제도나 이슬람교 세력이나 세계교회협의회(WCC)로 대체시키려는 자들의 노력 앞에 분명히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러한 우스꽝스런 헛된 노력들은 로크만 재단의 <확대 신약역본> 데살로니가전서 2:16의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사로잡힘에서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아예 회복되지 못하거나 그들의 메시아께로 회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되어있다.

 

에스라서의 저자는 에스라다. 하지만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새 성경주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실 기록자는 에스라와 가까운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었음을 암시하는 증거가 있다..."

지금 한번 신화적인 70인역의 사본 한 부를 구입해서 이 케케묵은 진부한 이야기가 어떻게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라. 배교한 알렉산드리아 이단 (1800-2000년)의 90%는 추측을 가지고 사실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증거를 제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신원 불명의 "Mr. X" 가 "에스라의 저자"였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 특별한 암시는 거부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경향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세대를 25년으로 감안한다면... 암시될만한 증거가 있다... 어떤 이들의 믿음에 따르면... 엘리아십의 증손자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그는 자신의 대제사장직을 시작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빈약하긴 해도 ... 그것은 몇몇 증거들을 제공해 준다..."

내가 지금까지 (1950-2004년) 읽어 본 바에 따르면 이런 수법은 모든 로마 카톨릭 변증자들이 사용했던 방식과 동일하다. 그들은 이런 수법을 사용하여 반성경적인 카톨릭 전통들을 성경만큼이나 권위있는 것으로 입증하려고 그 전통들을 정덩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에스라가 에스라서를 기록했다고 확신해도 좋다. 어떤 유식한 바보가 에스라가 기록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때까지, 곧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에스라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신명기 34장을 모세의 율법속에 삽입할 수 있었던 것과 똑같이 느헤미야도 에스라 7:1-10을 삽입할 수 있다.

 

신화적인 70인역은 "에스드라"라고 불리는 위조 문서를 구약 정경에다 첨가해 놓았다. 이 가짜 에스라는 히브리어가 아닌 곧 배교한 그리스 학자들이 우아한 헬라어라고 부르는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우아한 헬라어는 한 대학, 곧 알렉산드리아의 "에스드라 1,2서"가 영감받은 구약 정경의 일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다.

에스드라 1서 3:1 - 5:6의 내용은 구약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순전히 시시한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에스드라 1서의 나머지 부분은 느헤미야 7,8장과 역대기하 35:1 - 36:21의 일부와 에스라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에스드라 2서는 "우리엘"천사 (마호메트의 600개의 날개를 가진 가브리엘 천사처럼 우화 속에 나오는 천사)가 해석한 환상들로 기득 찬 우화 같은 "묵시록"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카톨릭의 부패한 위조 문서들은 둘다 저자들이 알려져 있지 않다. 에스드라 1서는 성령께서 히브리어 구약 정경의 기록을 말라키에서 종결하신지 2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기록되었고, 에스드라 2서 역시 오리겐이 헥사플라를 인쇄했을 때까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라오디케아 시대 성경 비평가인 런던 성경대학의 컨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게 일고 있다. 이는 틀림없이 두 책에서 가장 풀기 힘든 난제일 것이다.... 이 논쟁에 관한한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말 그럴까?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일까?  에스라는 서기관이었다. 서기관은 성경을 베끼고 보관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서기관은 레위인이어야 했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에스라가 어떤 신원불명의 연대기 작가보다 훨씬 더 잘 기록할 수 없었다고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 심각한 논쟁에 연루된 어떤 학자도 에스라나 느헤미야 안에 들어있는 어떤 예언적인 요소도 다루지 못한다. 심지어 어떤 영적인 교훈도 다루지 못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성경의 진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들이 진짜 문제를 다루는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1.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

2. 본문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도록 영적으로 해석해 버렸다.

3. 자신의 무지를 무마시킬 목적으로 본문의 표현을 바꾸기 위해 헬라어나 히브리어로 달려갔다.

4. 그 구절을 설명해 줄 성경의 참조구절들을 파괴해 버렸다.

본 주석서는 이상 네ㅔ가지 불경건한 속임수 가운데 단 한가지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어떤 문제에 대한 적합한 설명이나 성경의 전체 구조와 일치하는 해석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그저 "모르겠다"라고만 말해줄 것이다. 결코 우리의 무지에 대한 책임을 성경 전체 66권의 저자이신 분들께 돌리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한 것을 가지고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의 무지나 오류 때문이라고 단 한 번이라도 그 책임을 전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라오디케아 시대의 근본주의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사나이답게 행동하고 (삼상 4:9)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철로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갈 것이다. (딤후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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