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현 2012. 12. 20. 21:05

 

1:8 먼저 너희 모두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해짐이라.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나의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시니 나의 기도에 쉬지 않고 항상 너희를 말하며

1:10 어떻게 해서든지 이제는 내가 언제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너희에게 나아갈 형통한 여정을 갖게 되기를 간구하노라

1:11 내가 너희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내가 어떤 영적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게 하려 함이니

1:12 이는 곧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인하여 서로 위로를 받으려 함이라.

 

     바울은 이 서신서를 사실상 믿음이라는 말로 서두를 열고 있다. 그리고 여기 1장에서만도 5절에 이

8절과 12, 그리고 17절에서도 보듯이 이 믿음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믿음” (faith)

라는 단어가 구약에서는 전체를 통틀어도 단 두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믿음

으로아벨이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던지, “믿음으로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든지

믿음으로노아가 방주를 예비했다든지, 수태할 나이가 지난 사라가 믿음으로씨를 잉태하는 힘을 받아

아이를 출산했다든지, “믿음으로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렸다든지, 모세가 믿음으로이집트를 떠

났고, “믿음으로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지켰다든지, 그가 인도하는 유대인들이 믿음으로마른 땅을

건너가듯 홍해를 건넜다든지, 하다못해 창녀 라합도 믿음으로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다든지 하

는 등등의 구약 시대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보았을 터인즉, “믿음이란 단어는 이처럼 원체 귀익은 말이어서

구약에서도 여러 곳에서 아주 빈번하게 나올 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당신이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히브리서 11장에서 많이 읽어둔 탓이다. 이 단어는 구약 중 신명기 32:20에서 나오는데 이것도 하필이면

이는 그들이 매우 비뚤어진 세대며, 믿음이 없는 자녀임이라』는 말씀 가운데 끼여서 나온다. 구약 중 또

한 군데는 하박국 2:4에서 『그러나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가운데 나오고 있다.

그리고는 구약에서 더 이상 믿음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구약이 신약의 다른 점들 가운데 눈

에 띄는 대목 중 하나다. 신약에서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245회나 나온다.

 

  먼저 너희 모두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 믿음이 온 세

에 전해짐이라.(8)

여기서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말하는데, 물론 이것은 그 당시 아메리칸 인디언들

게까지 그들의 믿음이 알려졌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모든이라든지, “라든

지 또는 누구든지와 같은 단어들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예를들어 모든” (all)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때로 구별 없이 모두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두” (without distinction)란 뜻이 되기도 하고, 또 어

떤 때는 예외 없이 모두또는 누구 하나 제외됨 없이” (without exception)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 요한복음 3:16 말씀의 경우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

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에서 『누구든지예외 없이 모

누구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고라는 의미의 『누구든지』이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그를 믿는 사

람이면 누구나 다 예외 없이 모두 멸망하지 않고…”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말씀과 관련하여 한 가지 주의를 환기시켜야겠다. 이 구절은 분명 『그를 믿는 사

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믿고 자시고 할 만큼 충분히 자라

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갓난 아기는 어쩌란 말인가? 이 갓난 아기는 믿을 기회도 잡지 못하고 애석하게

죽는 바람에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에 포함 될 찬스가 없었다. 엄마 등에 업혀 주일날 교회 예배에 한두

번 나온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구원으로의 초청 시간에 제 발로 걸어 나온다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젖먹이였다. 이런 경우 이 아기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었는가? 아니면 멸망하고 말았

는가? 성경에는 이런 경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볼 기회가 여러 차례

나오므로 뒤로 미룬다). 이처럼 성경에 직접적으로 일일이 기술되지 않은 채 공백으로 되어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코네티컷 주에 로렌조 다우라는 훌륭한 목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을 신봉하는

자들을 일컬어 전체를 한 부분만 보는 자들”(whole-part men) 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성경에서

”(whole)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유달리 한 부분” (part)이라고 고쳐 읽는 칼빈주의자들을 빈정댄 말

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

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는 것을 칼빈주의자들은

나님께서 세상에서 일부택함 받은 이방인들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 중 일부택함 받은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라고 읽는다는 말인데, 여간 적절한 풍자가 아닐

수 없다. “예외 없이 모두란 뜻의 누구든지를 주의해서 읽지 않으면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

기 마련이고 그 결과 성경을 믿지 못할 책으로 전락시키고 말기 때문에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또, “모두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큰 낭패를 당하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령,

오늘 온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하라는 지시를 받은 가정부가 이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기가

막혀 빗자루도 들기 전에 그 자리에 주저 않고 말 것이다. “온 집안을 구석구석이라니, 아니 그럼, 굴뚝

검댕도 긁어내야겠고, 지붕 기와에 낀 흙 먼지까지도 닦아내야겠고, 물 내려가는 세면대 U파이프 속까지

도 분해해서 닦아내야 한다는 말인가? 설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잖은가? 가정부는 안방만 청소하지

말고 건넌방도 정리하고 마루도 쓸고 닦으라는 지시를 받은 게 아니던가? 말하자면, 여기서 온 집안이란

이 방 저 방 가리지 말고” “구별 없이 모두란 뜻으로 한 말이다. 이런 예로 에베소서 6:21을 보자. 이제

너희는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나에 관한 것을 알게 되리니 사랑하는 형제요, 주 안에서 신실한 일꾼인 투기

고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투기고가 아무리 주 안에서 신실한 일꾼이기로서니 어떻게 『

든 것(all things)을 알려줄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바울의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알려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은가? 이런 경우  모든 것』이란 어느 특정한 것 한두 가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

들을 두루두루 구별 없이 모두란 뜻이다. 더구나 여기서는 문맥상 바울에 관한 것들,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일들에 관한 것들 갖가지를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고루 고루란 뜻으로 한 말이다.

 그런즉, 바울이 여기 8절에서 『온 세상』이라고 말한 것은 세상에 두루 두루 널리란 뜻으로서 “without

distinction”이지, “세상 모든 나라 한 군데도 예외 없이란 뜻으로서의 “without exception”은 아닌 것이

. 로마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비록 대서양 건너 카리브해 지역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최소한 로마 제국 영토 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졌을 터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당시 로마

제국은 고울 지방 (독일지역)이라든가, 영국의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라던가, 프랑스 등등 유럽의 거의 모

든 지역과 아프리카 일부까지 영토로 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이 여기서 『온 세상』이라고 언급한 그 온 세

은 아마도 그 당시로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던 전세계 거의 모든 지역들을 포함해서 한 말일 것이

.

 

 예외 없이 모두란 의미를 강력하게 내포하고 있는 성경 구절의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가령,

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딤전 2:6)와 같은 말씀이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위한 몸

값으로 자신을 내어 주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나의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시니 나의 기도에 쉬지

않고 항상 너희를 말하며』(9).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되 『나의 영으』 섬

긴다고 말한다. 나의 영』이라면 사람의 영이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사람의 영을 갖고 있다. 구원받은 사람은 여기에 또 성령을 갖고 있다.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

람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 사람의 영이 살아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또 성령을 몸 안에 갖고 있게 된 데 반

하여, 후자의 경우는 사람의 영을 갖고는 있으되 그 영마저 죽어 있다는 사실이고 더더구나 성령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영이 죽어 있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래서 동물과 마찬가지다.

『나의 기도에 쉬지 않고 항상 너희를 말하며』 여기서도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항상』이란 한 순간도 예

외 없이라는 뜻이 아니라 때를 가리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늘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

라』(살전 5:17)고 명령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기도하는 일에서 손을 떼거나 게을리 하는 일이 없도록 하

라는 명령이지, 식음을 전폐하고 3일 동안 기도만 하라는 것도 아니요, 한 달 내내 기도만 하고 앉아 있으

라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제는 내가 언제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너희에게 나아갈 형통한 여정을 갖게 되기

를 간구하노라』(10)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을 당시 로마에는 구원받고 거듭난 상당수의 그리스도인

들이 있었는데, 그가 로마에 가서 이들을 만나보고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오랫동안 열망했던 심

경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토록 열망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되기를 간구했지

자기 뜻에 따라 기회가 만들어 지도록 꾀하지는 않았다.

 내가 너희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내가 어떤 영적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게 하

려 함이니(11)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던 터였기 때문에 사도적영적 은사』를 갖고 있었고,

것을 로마의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는 유대인 사도였다. 따라서 바울이 받았던 사도적 은사들

역시 유대인 사도들에게 따랐던 사도적 표적으로서의 은사들이었다. 너희를 굳게 세우게 하려 함이니

에서 굳게 세운다는 말은 정신적으로 확고히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지옥에 가지 않게 되었다라는

의미로 굳게 섰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정신적으로 땅속에 깊게 뿌리 내렸다는 의미로 굳게

섰다고 말할 때는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안정돼 있다는 뜻이다. 내가 어떤 영적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성령 운동을 한다는 오순절파 은사주의자들은 소위 은혜의 두 번째 역사” (second

work of grace)에 대한 근거 구절로 이 구절을 이용한다. 로마에 있던 성도들이 영적 은사를 아직 받지 못

했기 때문에 바울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고, 바울 역시 하루 빨리 로마로 가서 자기가 갖고 있던 영적 은

사를 그곳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다는 것이 은사주의자들의 생각인 것이다. 이것이 어떤 면에서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바울이 언급하는 은사는 단지 『영적 은사』이기 대문

이다. 그러나 문제는 은사주의자들이 이 정도 선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은 이곳 저곳 다른

구절들을 더듬고 다니면서 아주 이상한 교리를 이끌어 낸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두 번째 역사라는 교리

. 그들은 고린도후서 1:15을 읽다가 『그리하여 나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전에 너희에게 가려고 하였

으니 이는 너희로 두 번째 은혜를 얻게 하려 함이며』라는 바울의 언급 가운데 나오는 『두 번째 은혜』라는

말에 눈독을 들인다. 그리고 이것을 『어떤 영적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라는 로마서 1:11과 한데

묶어서 은혜의 두 번째 역사라는 그 괴상한 교리를 엮어 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은혜의 두 번째 역

를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 강림의 두 번째 축복이라고도 부른다. 구원의 은혜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첫 번째은혜라면, 성령을 주시는 은혜는 그 첫 번째 은혜에 뒤따라 베풀어지는 두 번째은혜라는 것

이다. 그들은 이 두 번째 축복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보완하기 위해 이번에는 또 고린도후서 8:6로 달려

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에게 권하였던 것은 그가 전에 시작하였던 바와 같이 이 은혜를 너희 안에서

도 완성시키라는 것이었느니라』 그들은 이 구절을 읽으면서 구원의 첫 번째 은혜에 성령을 받는 두 번째

은혜까지 더해질 때 비로소 『은혜를완성』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언급하는 『은혜』는

그들이 말하는 소위 성령강림의 은혜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은혜이다. 이 구절에 앞서 2, 3, 4,

5절을 차례로 읽어 보면, 풍부한 연보(2), 능력에 따라또 능력이상으로 자원하여(3), 우리가

은혜를 받을 것과 성도들을 섬기는 일(4),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이 은혜를

(5)로 문단이 이어진다. 이만하면 여기서 언급되는 은혜가 다름아닌 연보를 의미한다는 것쯤은 조금

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들은 이런 문맥의 흐름 따위는 전혀 무시해버린 채

오로지 6절 한 절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거기서 『은혜를 완성시키는 것』이라는 말만 살짝 뽑아다 쓴

.

, 이번에는 고린도후서 1:15로 되돌아가 은사주의자들의 은혜의 두 번째 역사또는 성령을 받는 두

번째 축복따위와 같은 터무니 없는 교리의 토대가 되고 있는 『두 번째 은혜』의 실체가 무엇인지 살펴보

. 15절에 앞서 먼저 11절을 읽어 보면 이렇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로 협력하라. 이는 많은 사람

으로 인해 우리에게 내린 은사에 대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많은 사람이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지

우리에게 보내준 『은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리 대신 감사를 표해주기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이 보내준 재정적 지원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데, 이 감사한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함

께 표명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즉, 이 구절에서의 『은사』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적 은

가 아니라 단순히 헌금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15절에서의 『은혜』라는 단어 역시 성도들이 보내준 물질적 성원을 의미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이런 단어나 어구들은 은혜의 두 번째 역사, “성령강림의 두 번째 축복이니 하는, 말도 되지 않는 교

리를 정립하는 데에 써먹는 것이다.

 은사주의자들은 이차적 회심 체험” (subsequent conversion experience)이니, “성령 체험이니, “성령의

증거 체험이니, “성령 세례, “성령 충만 체험이니 하면서 무슨 체험을 하는 것을 중히 여기지만,

런 것들 대부분은 사실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나타난다. 설사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은 구원받기 전의 예 사람에 의한 것이다. 물론 구원받은 후에 어떤 느낌이 올

수도 있고, 감정의 변화가 올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런 감정을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가 신뢰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이는 곧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인하여 서로 위로를 받으려 함이라.(12). 이런

말은 사실 11절의 말과 견주어 바울의 사람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는 바울의 이런 인간미가 참 마

음에 든다. 11절의 경우는 마치 바울이 높은 데 앉아서 밑에 있는 그들을 도와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12절의 경우는 실은 말이오실은, 당신들과 교제하면서 믿음의 간증을 나누는 가운데 당신들도 위로를

받고 나도 위로를 받고 싶다는 게 지금의 내 심정이라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바울의 인간미 넘치

는 모습이다.

고린도후서를 읽어보면 바울이 얼마나 인간미가 있는 사람인지 더 생생히 알 수 있다. 고린도후서에서 그

는 마치 사적인 편지라도 쓰듯이 붓을 옮기고 있다. 거기에는 무슨 교리 같은 것을 끄집어내 어려운 문제

를 생각하게 한다거나 하지 않고 이것저것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현실적인 이야기들만 기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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