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7. 19:31ㆍ카테고리 없음
애절양 [哀絶陽] - 양근(陽根)을 잘라버린 서러움
갈밭(蘆田)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 蘆田少婦哭聲長
현문을 향해 가며 하늘에 울부짖길 / 哭向縣門號穹蒼
쌈터에 간 지아비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 夫征不復尙可有
남자가 그 걸 자른 건 들어본 일이 없다네 / 自古未聞男絶陽
시아버지 삼상 나고 갓난애는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 舅喪已縞兒未澡
조자손(祖子孫) 삼대가 다 군보에 실리다니 / 三代名簽在軍保
가서 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 薄言往愬虎守閽
이정은 으르렁대며 마굿간 소 몰아가고 / 里正咆哮牛去皁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 磨刀入房血滿席
자식 낳아 군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 自恨生兒遭窘厄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음형 당했던가 / 蠶室淫刑豈有辜
민땅 자식들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 閩囝去勢良亦慽
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정한 이치기에 / 生生之理天所予
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 / 乾道成男坤道女
불깐 말 불깐 돼지 그도 서럽다 할 것인데 / 騸馬豶豕猶云悲
대 이어갈 생민들이야 말을 더해 뭣하리요 / 況乃生民恩繼序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 豪家終歲奏管弦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 粒米寸帛無所捐
똑같은 백성 두고 왜 그리도 차별일까 / 均吾赤子何厚薄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 客窓重誦鳲鳩篇
잠실음형(蠶室淫刑): 남자는 거세(去勢)를 하고 여인은 음부를 봉함하는 형벌.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밀실에 불을 계속 지펴 높은 온도를 유지시키는 방이 잠실(蠶室)인데, 궁형(宮刑)에 처한 자는 그 잠실에 있게 하였음. 《漢書 武帝紀》
민땅……거세한 것 : 민(閩)의 사람들은, 자식을 건(囝), 아버지는 낭파(郞罷)라고 불렀는데, 당(唐) 나라 때에 그곳 자식들을 환관(宦官)으로 썼기 때문에 형세가 부호한 자들이 많아 그곳 사람들은 자식을 낳으면 곧 거세를 하여 장획(臧獲)으로 만들었다고 함. 《靑箱雜記》
시구편(鳲鳩篇) : 《시경(詩經)》의 편 이름. 군자(君子)의 마음이 전일하고 공평무사한 것을 찬미한 시.
애절양(哀絶陽)은 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지은 7언 20구의 漢詩다. 여기서 말하는 ‘절양(絶陽)’은 남성의 생식기를 자른다는 것이다. 1∼4구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자신의 양근(陽根)을 자른 기이한 사건과 그로 인해 목 놓아 우는 아낙의 처절한 모습을 그렸으며, 5∼10구에서는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전말인 죽은 시아버지와 갓 낳은 자식이 군적(軍籍)에 올라 있는 기막힌 현실을 고발하였다. 또 11∼16구에서는 양근(陽根)을 자른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다시 객관화시켜 따져 묻고 있다. 소나 돼지가 그런 일을 당해도 측은한 것인데 하물며 사람이 스스로 그런 일을 행하게 된 슬픔은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17∼20구에서는 백성들은 세금을 견디다 못해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현실에 처해 있음에도 양반 부호들은 오히려 일년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한 톨의 세금도 내지 않고 있는 사회적 모순을 다시 고발하고 있다.
“이것은 가경(嘉慶) 계해년(순조3-1803) 가을에 내가 강진(康津)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그때 갈밭마을에 사는 어떤 백성이 아이를 낳았는데, 3일 만에 그 아이가 군적(軍籍)에 오르게 되어 이정(里正)이 군포(軍布) 명목으로 소를 끌어가 버렸다. 그 백성은,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런 곤욕을 치른다’ 하고는 칼을 갈아 가지고 방에 들어가 자기 양경(陽莖)을 잘라버렸다. 아내가 피가 뚝뚝 듣는(血猶淋淋) 남편의 양경을 주워들고는, 관청을 찾아가서 울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했으나, 문지기는 도리어 호통을 치면서 쫓아버렸다고 한다. 내가 이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余聞而作此詩)” 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