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9. 21:53ㆍ카테고리 없음
전설
문병란
서울 특별시 반포동
맨션 아파트에 사는
회사원 김모씨의 생후 10개월 장남이
5만원 짜리 미제 옷에
40만원 짜리 미제 유모차를 타고
음악이 나오는
1만 2천원 짜리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잠이 오면
60만원 짜리 독일제 침대에서 주무신다.
김씨의 아들 잠에서 깨어나면
미제 아이보리 비누로 목욕을 하신 뒤
역시 미제 파우더를 바르고
미제 턱받이를 찬 채
이태리제 식탁에 앉아
스위스제 분말 이유식을
서독제 우유병 젖꼭지로 빨고
영국제 종이 기저귀를 갈아낀 다음
이태리제 방수요를 덮고 주무신다.
이상의 발언은
농민에게 선심 추파를 던진
어느 국회의원 조사 보고서
83년 119회 정기국회
비정을 따지는 속기록 한 대목
같은 해 같은 나라
전북 부안군 개화면 창북리
어느 농가에서 일어난 일
바쁜 농사철이라 일손이 없어
갓난아기를 논두렁에 눕혀 놓고
성장을 다투는 벼논에 농약을 쳤다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 왔지만
칭얼대거니 건성으로 흘려버리고
바쁜 것이 농약치는 일이라
그대로 못 들은 척...
일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이 무슨 괴변인가?
애기 입 속에 뱀꼬리가 조금 남아 있었고
애기는 이미 질식해 죽어 있었다
뱀이 물어 죽은게 아니라
뱀이 입을 구멍으로 알고 들어가 죽었다
뒤늦게야 달려온 애기 아버지
애를 잘 못 본 어머니를 때렸고
아기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 어머니는 미쳐 버렸다는 애기...
이는 평화라는 제명의
가톨릭 농민회 기관지 보도
슬프다기 보다는
소름끼치는 한국판 몬도가네
서울의 회사원 김씨와
전라도의 농민이 함께 사는
같은 땅 위에 전개되는
이 두가지는 사실이 아닌
차라리 전설,
번영의 그늘에 우는
이 땅의 절규를 안고
아, 나는 이제 무슨 시를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