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5. 13:29ㆍ피터 럭크만의 저서/신약교회사
역사의 이 시점 (A.D. 100-200년)에서는 순교자들의 시체가
종교적 숭앙물로 (물신숭배사상) 숭배되기 시작했고 순교가 참된
성도인가를 시험하는 기준이 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위험한 이단들은 그들의 씨앗을 뿌릴 비옥한 옥토를
만난 셈이다.
하나님을 위해 순교할 만큼 그분을 사랑한 그 순교자의 신학 사상을
그 누군들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이보다 더 경건한 사람이 있겠는가?
이런 사람이 한마디 하는 그것은 거짓 교리일 리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목숨을 내어 놓기까지 주님을 사랑한 "선하고 경건한" 그 사람이야말로
거짓 교리보다 경건한 순교자가 가르친 거짓 교리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그 누룩이 번져 나갔던 것이다.
오늘날도 자유주의자나 신복음주의자 같은 이단보다는 근본주의자,
보수주의자, 복음주의자들이 거짓 교리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퍼트린다.
이처럼 교회는 콘스탄틴이 칙령으로 기독교에 관용을 베풀기도 전에 (A.D.313년)
성경을 거부하는 노선을 택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배교에 이르는 길은 니케아 이전 교부들이 포장해 놓았다.
땅에 있는 사람을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하셨는데 (마23:9)
마 23:9 또 땅에 있는 사람을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기 때문이라.
어째서 교부 (Ante Nicene Father) 즉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는가?
우리는 이들 교부들의 경건하고 영적인 생활과 그들의 개인적 성별 및 용기를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들의 의견이나 선호 (취향)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요 17:17, 히 4:12, 잠 30:6)에 분명히 어긋나는 경우
이를 용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요 17:17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
잠 30:6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
그분이 너를 책망하실까 함이며, 네가 거짓말쟁이가 될까 함이라.
그 어떤 성경대로 믿는 사람도 아무리 인간들이 경건하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는 대신에 현대인의 종교,즉 휴머니즘 (1980)을 택할 수는 없다.
휴머니즘은 곤산주의자와 카톨릭(1980-1990)의 종교로 이들은 이 지구상에서
성경대로 믿는 모든 사람의 씨를 말려 버리려고 애쓰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