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3. 20:03ㆍ피터 럭크만의 주석서/갈라디아서
박해하였으며 황폐시켰고
갈 1:14나의 동족 가운데 많은 동년배들보다도 유대교를 믿는 일에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데 더욱더 열성을 내었느니라.
갈 1:15그러나 나의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선별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갈 1:16나로 하여금 이방 가운데 그를 전파하도록 내 안에 그의 아들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즉시 혈과 육에 의논하지 아니하고
여기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장들인 창세기 3,4,12,22,24장과 출애굽기 12,20장 등과 함께 언급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본문의 말씀들은 사도의 마음과 혼에서 나오고 있으며, 그는 독자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 단어를 선택하는 데에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본문은 자신의 말은 임무와 책임에 대해 분개하고, 동요하며, 염려하고 질투하는 사람의 격정적인 자기 분출이다. 본문은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의 설교와, 신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배운 지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부른 사람의 설교와의 차이점들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자신이 말하는 것과 의미하는 것이 동일한 사람은 현대의 주석가들이나 학자들 처럼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배가 고파지면 갑자기 음식에 대한 갈급함이 있게 된다., 사람이 매우 피곤할 때는 잠에 대한 갈급함을 가진다. 진리에 대해 갈급해 하는 어떤 사람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말하거나 글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바리새인도 케네스 위스트나 티엠 박사, 마쉘 닐이 거룩한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더 갈급함을 가지고 말한다. 배고픈 사람이 “사랑하는 아내여, 내가 이 집의 요리 방법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있어서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소. 그러나 나는 저녁 식탁에 양식이 없음이 다음과 같은 충분한 증거로 드러남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라고 말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어떤 배고픈 사람도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보듯이 바울과 자기들을 같은 부류로 두는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필사본 증거> 6장의 각주 96에 있는 “바울 강박관념”을 참조하라.) 쿠프로 (행 13:4)1로 항해하려고 하는 바울의 갈급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 나는 너희가… 그렇게 빨리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됨을 이상히 여기노라 』(6절). 바울은 소문으로 이 소식을 알았다. 사도행전 13,14장의 사역들(특히 사도행전 14:21-252)에 유대주의자들의 충고(행 15:1,53 참조)에 의해 누룩이 스며들고 말았다. 바울은 지금 어린 교회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서문의 저작 연대를 참조하라)
학자들도 본문 6절의 “다른”을 강조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가 이미 <킹제임스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변개된 성경을 통해 줄 수 없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 “너희들은 누군가로부터 어떤 것들을 `복음’이라고 듣고 있지만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비평가들이 갖고 들어온 오류들을 보려면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의 <주석서>(p.1259)를 읽어봐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6절의 “다른”과 7절의 “다른”이 헬라어로 같은 단어가 아니기에, 6절은 “틀린”(different)복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주석인가! 그러나 그들은 이같이 설명해 놓고 나서 8절에서는 안면을 바꾸어 8절의 “어떤 다른 복음”은 6절과 7절에 대한 언급이 아니며, 8절은 여러분이 들었던 것을 제외한 다른 복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에는 6,7,8절이 얼마나 분명하게 설명되고 있는지 놀랍지 않은가?
1. 너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접했었고, 너희들은 이 복음을 진리로 받아들였다(6절).
2. 너희는 이 메시지가 하나님 아버지(4,6절)로부터 온 것임을 믿었고, 그것을 그분의 은혜의 역사로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그것을 듣는 것마저도 그분의 공로로 여겼다.
3. 내가 떠난 뒤(행14,15장) 누군가가 너희에게 어떤 다른 것을 전하며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복음의 변개일 뿐이다(7절).
4. 그 변개된 복음은 은혜를 약화시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6절)
5. 만일 천사를 포함하여 누군가가 너희에게 다른 것을 전한다면, 주님께서 그를 선하고 적절하게 저주하시도록 하라(8절).
<필립스 역본>은 7절의 “변개”(pervert)를 “희화화”(“우스쾅스럽게 만들다”travesty)로 아주 엉뚱하게 번역하였다. ASV(1901)는 어떤 다른 사람이 그들을 떠나게 하는 도구였기에(6,7절), 6절의 “떠나”(removed)를 중간태로 잘못 번역하였다. NEB는 8절의 “저주를 받으리라”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러한 단어는 이 글이 쓰일 때 바울이나 성령님의 마음 안에 없던 단어라고 주장하면서, 본문을 “쫓겨나리라”(shall be held outcast)로 대체시켰다. [이같이 본문을 회칠하여 속이는 것은 고상한 눈과 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같이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하노니… 』(9절). 이와 관련하여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 렌돌(<헬라어 주석성경>, 1961)은 바울이 이전 여행에서 갈라디아인들에게 말로 전했던 설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신간의 중복”은 바울의 글들에서 자주 나타난다(고후 13:4,6,7,9; 10:1,2,3,4 고전 15:15,19,32 등)4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누구에게도 8절의 말들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이후까지는 그가 “이교도들 가운데 전파했던” 복음에 대해 이러한 갈급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복음을
- 그들은 실로 성령께서 보내신 것이라. 셀루키아로 갔다가 거기에서 쿠프로를 향하여 배를 타고 가니라. [본문으로]
- 그들이 그 성읍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루스트라와 이코니움과 안티옥으로 다시 돌아가서 제자들의 혼을 강건케 해 주고 그들이 믿음 안에 거하도록 권고하며 또 우리가 많은 환난을 거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니라. 두 사도는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선임하고 금식 기도하며 자기들이 믿는 주께 자신들을 의탁하더라.그들이 피시디아를 경유하여 팜필리아에 도착한 뒤 퍼가에서 말씀을 전하고 앗탈리아로 내려와서 [본문으로]
- 행 15:1 유대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형제들을 가르치며 말하기를 '너희가 모세의 율례에 따라 할례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노라.'고 하더라. 행 15:5 그러나 바리새파에서 믿는 몇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그들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니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권고하라.'고 하더라 [본문으로]
- 고후 13:4 그 분은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느니라. 우리 역시 그 분 안에서 약하지만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분과 함께 살 것이라. 고후 13:6-7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버림받은 자들이 아닌 것을 너희가 아는 것이라. 이제 나는 너희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노니 이는 우리가 인정받은 자로 나타나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우리가 버림받은 자같이 될지라도 너희로 정직한 것을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3:9 우리는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노라. 이것은 또한 너희의 온전함을 위하여 우리가 기도하는 고후 10:1-4 너희 가운데서 대면하면 겸손하고 너희에게서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이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공손함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라.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따라 행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신감으로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담대하게 되지 않기를 간구하노라. 이는 우리가 육신 안에서 행하지만 육신을 따라 싸우지는 아니함이니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능력이라.)고전 15:15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거짓 증인들로 밝혀지리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정녕 살아나지 아니한다면,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고전 15: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이생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전 15:32 내가 만일 사람들의 방식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만일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우리도 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죽으리라.'고 하였으리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