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3. 20:08ㆍ피터 럭크만의 주석서/갈라디아서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은 사도행전 13,14장에서 발견되지 않으며 사실 사도행전 15장 이전에는 다른 복음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만일 “우리”가 바울과 바나바라면 바나바가 갈라디아서 2:11에서 역시 바로잡히는 것이 발견된다. “전에 말한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데, 이는 바울이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하노니…”(9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3:45,50,512의 유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변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은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모독했다(행 13:45).3
우리는 아직 본문의 핵심에 도달하지 않았다. 본문의 음식은 성경 본문을 이리저리 바꾸는 성경 개정자들과 주석가들인 드웨트, 엘리콧, 라잇풋, 알포드, 메이어, 워즈워드,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 더메로우, 벌링거, 헉스터블(<강단주석>)에게서 결코 얻을 수 없다. 그들에게서는 전혀 말씀의 조명을 발견할 수 없다.
본문이 정확히 말하는 것은 이 시대에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의롭게 된다)고 가르치는 모든 설교자, 감독, 교황, 사역자들이 지옥으로 저주받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헬라어 주석성경>(3권, p.152)을 펴서 이 구절을 얼마나 학자풍으로 다루었는지 보라. 형용사의 능란한 속임수로 8,9절의 저주를 받은 자가 이런 저런 불이익을 받지만 결코 지옥에는 가지 않도록 만들어 놓았다. 다른 복음을 전한 사람이 “영적 죽음”과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를 경험하게 되고 “그리스도인의 축복”과 “은혜의 수단”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실이나, “원어 공부”를 30년간 공부한 결과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으로 하여금 8,9절의 범죄자가 불못(계 20:15)4에서 탈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기독교 교육”은 하늘로 가는 여정에서 바울을 따르는 성도들을 방해하며, “최초의 원본”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바울 서신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상상해 보라! “최초의 원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사람이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모든 교황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2. 이것을 가르치는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3. 이것을 가르치는 모든 여호와의 증인5, 몰몬교6, 은사주의 설교자와 장로교7, 감리교8, 루터교9, 회중교회10의 설교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위대하고 교육받은 사도며, 세련되고 교양있고 헌신된 이방인의 사도가 그들의 저주를 원하고 있다. 그들이 저주받길 원한 동일한 그 사람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 거의 자신이 저주받길 원하였다(롬 9:3).11 문제는 “저주”(damn)라는 말에 있다. 모든 주석가들은 좀 더 부드러운 말인 “정죄”(condemn)라는 말을 선호한다. 월리엄스는 의심의 여지없이 올바로 말하기를 8,9절은 기도일 뿐 아니라 예언이라고 한다.
이제 한가지 문제가 남는다. 어떻게 본문을 적용할 것인가?
존 웨슬리(1703-1791)는 저주 받았는가? 그는 비록 첫 번째 구원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지만, 틀림없이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유지한다고 설교했다. 웨슬리는 피터 카터라잇(Peter Cartwright), 모리슨(C.H orison)12, 컬피퍼(Culpepper), 에즈버리(Asbury)와 같이 성도들은 반드시 “끝까지 견뎌”(마 24:13)13일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교황 요한 13세(1410-1415)가 구원을 잃어버린 것처럼 쉽사리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가르쳤다. 모든 회중교회와 카톨릭의 신학은 알미니안주의14이며, 그가 비록 “믿음을 통해 은혜로”(엡 2:1-10)15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그들 중 누구도 구원받은 후에 은혜로 구원을 유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여기 본문에 있는 실제적인 문제와 부딪치는데, 우리는 본문의 진정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위치에 있다. 물론 이 진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보수주의, 근본주의 비평가와 전적으로 상관없이 발견되어 진다. 말씀들의 진리와 의미들을 찾는데 있어 그들의 원어사전들은 전혀 무익하다.
1. 여기서 복음은”기쁜 소식”이다.
2. 그것은 갈라디아에서 전파된 사도행전 13:1816의 “기쁜 소식”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시몬 베드로에 의해 재확인된 기쁜 소식이다. 성도가 구원받은 이후에 그의 생활에 대한 바울의 향상된 계시와 상관없이 그를 구원으로 인도한 메시지는 갈라디아서 1:8,9에 언급된 복음이다.
3. 이것은 옛날의 감리교도들을 본문의 저주로부터 제외시켜 주며, 적어도 그들은 피의 속죄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거저 주시는 영생의 선물을 전파했기 때문이다.비록 그들이 그들의 머리 속에서는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를 올바로 해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마음으로부터 요한복음 3:1617을 전파할 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생애와 사역을 축복하셨다. 그들 중 99%가 그렇게 했다.
4. 그러나 “구원의 계획”이 전파될 때 “만일 당신이 이것을 행하면, 그리고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그리고 계속해서 이것을 행하면”이라고 전한다면, 그 설교자는 분명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마 23:15).18
이 무시무시한 진리들을 피하기 위해 주석가들은 다른 “방법들과 수단들”을 고안해 낸다.
a. 본문은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언급이며, 더 이상 그런 상황은 발견되지 않는다.
b.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은 단지 바울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며, 하나님께서는 적절히 그것을 무시하셨다.
c. 본문이 말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해도, 그것을 누군가에게 적용할 권리는 없다.
d. 이 공격적인 문장들은 “바울의 신학”일 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레로이 라잇(LeRoy Wright)의 말은 이 부분에서는 존중할 만한데, 미시시피의 독립침례교회 설교자인 그는 “만일 당신이 그 말이 공격적이라 생각된다면, 당신은 그 주위에 담을 세우는 편이 더 낫다”라고 말했다. 아니면 밥 존스 시니어가 “만일 당신이 바울이 썼던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장 전화를 걸어 하늘에 있는 그에게 그것에 대해 항의하라”고 한 말을 들려 주라.
본문이 의미하는 것은 “만일 당신이 어떤 죄인에게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외에 하늘에 가는 다른 방법을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옥으로 저주하신다”라는 것이다.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을 원하는가? 트렌치의 “동의어” 공부에서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바울의 “현대적인 모습”을 지워야만 한다. 바울은 지독하고 참을 수 없는 고집쟁이며, 그의 말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나 온정이 결여되었으며, 엘리야나 침례인 요한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달콤한 사랑의 영”이 부족하다. 알렉산더 캠벨이 “기쁜 소식”이라고 말한 것은 “만일 당신이 회개하고, 고백하고, 믿고, 침례받아 끝까지 견디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1장에서 말한 것이 문자적이라면 알렉산더는 지금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노센트 1세부터 모든 교황은 당신이 믿고, 고백하고, 성사를 지키고, 교회에 복종하고, 선한 생활을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노센트는 지금 어디에 있을 것인가? 메리 엘렌 화이트와 러더포드 판사는 여전히 십계명을 지키고 그 외에 다른 것들을 지켜야 하늘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8절). 바울은 당신이 놓치지 않도록 두 번씩이나 말하고 있다. 천사가 계시록 14:619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지만, 모든 주석가들은 이것을 놓치고 그들의 렉시콘을 가지고 우물쭈물거린다. 차라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읽는 편이 더 낫다. [종종 유명한 주석서들을 읽을 때마다 매우 실망스러운 것은 그들 중 누구도 그 구절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 그리고 나서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디도도 데리고 갔느니라 [본문으로]
- 행 13:50그 때에 유대인들이 경건하고 존경받는 부인들과 그 성읍의 지도층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박해를 가하고 자기들의 지경에서 쫓아냈으나 행 13:51 두 사도가 그들을 향해 자기 발에서 먼지를 떨고 이코니움으로 왔으며 [본문으로]
- 그러나 유대인들이 무리를 보자 시기로 가득 차서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모독하니라. [본문으로]
-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본문으로]
- 기독교의 한 파. 19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발생하였는데, 성경만이 인류의 유일한 지침서이며 예언서라고 믿으며 사람의 법이 성경의 법과 충돌할 때는 성경의 법을 우선으로 삼는다. [본문으로]
- 그리스도교의 한 종파로 한국에서는 '말일성도(末日聖徒) 예수그리스도 교회'라고 부르다가 2005년 7월부터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後期聖徒) 교회'로 명칭을 바꿨다. 모르몬교(Mormonism)라 부르기도 하나, 정식명칭은 아니다. 1830년 미국 뉴욕주의 맨체스터에서 조지프 스미스와 동료 6명에 의해 창건되었다.신약성서와 구약성서 외에 스미스가 하나님이 보낸 천사 모로나이의 지시에 따라 땅 속에 묻힌 고대 기록이 담긴 금판을 받아서 번역했다는 《모르몬경》, 그밖의 계시를 집대성했다는 《교의와 성약(聖約)》, 모세가 받은 계시의 수정판 격인 《값진 진주》 등을 기본 경전(經典)으로 삼고 있다. 하나님 및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믿는 점 등은 정통의 그리스도교와 같으나, 스미스에게 나타났다는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현현(顯現)과 계시, 삼위일체의 3위격(位格)인 성부·성자·성령을 독립된 존재로 보는 점, 《모르몬경》, 시간과 공간을 무한한 것이라 하고, 하나님의 천지 창조가 혼돈과 무질서 상태의 원소들을 조성하고 조직한 것으로 믿는다는 점이 다르다. [본문으로]
- 개신교의 한 파. 가톨릭교의 교황권을 부정하고 교회의 운영을 장로들의 합의제로 하자는 칼뱅의 장로주의에서 이루어졌다 [본문으로]
- 기독교 신교의 한 교파. 18세기 초 영국의 웨슬리가 제창하여, 교리보다 사랑의 실천에 중점을 두고, 감리사와 감독을 두어 교회를 다스리게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864년에 매클레이(Maclay, R.S.)와 아펜젤러가 선교하였다 [본문으로]
- 서방 그리스도교의 일파. 종교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 장 칼뱅, 성공회 등 여러 종파와 대립되는 마르틴 루터의 신앙원칙을 받아들였다. 루터교는 자신들을 개혁주의자라기보다 복음주의자라고 부르지만 늘 엄격한 것은 아니다. 루터교 교리는 보통 9개 신앙고백문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고백문들이 모여 합의서(Book of Concord)를 이룬다. 9개 중 3개의 신앙고백문은 초기 교회의 사도신경, 서방교회의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이며, 나머지 6개는 16세기 종교개혁에서 나온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슈말칼덴 조항, 루터의 대(大) 교리문답과 소(小) 교리문답, 협화신조(Formula of Concord)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처음 3개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Augsburg Confession)만이 모든 루터교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교리이다. 루터의 대 교리문답과 소 교리문답은 대부분의 루터교가 받아들이지만 협화신조는 잘 인정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협화신조가 엄격하고 너무 세세한 교리가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과 루터의 소 교리문답은 교리적인 측면에서 루터교를 잘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이후 생긴 여러 논쟁으로 인해 루터교는 여러 교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교 계파 중에서 루터교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크다. 루터교는 전세계에 분포하고 있지만 특히 지리적으로 북유럽과 서유럽에 많으며,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인이 이주해서 세운 신생국에도 많다. 스위스, 베네룩스 3국, 스코틀랜드처럼 개혁주의 신앙이 우세한 곳에서는 루터교가 약하고,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과 같이 성공회가 우세한 곳에서는 성공회 다음으로 영향력이 강하다. 초기부터 계속된 유럽 대륙의 선교단체와 후에 분산된 루터교단의 끊임없는 선교활동으로 루터교는 선교지(宣敎地)와 소위 신생교회 형성에 많은 공헌을 했다. 루터교는 세계 본부를 인정하지 않으나 세계 대부분의 루터교도들은 제네바에 본부를 둔 루터교 세계연맹(Lutheran World Federation)에 협력한다 [본문으로]
- 회중교회주의(Congregationalism), 16세기말과 17세기초에 잉글랜드 개신교 교회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각 회중이 지교회 이상의 인간 권위로부터 독립하여 자체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결정을 하는 권리와 의무를 강조한다. 오늘날 여러 교단이 이러한 교회정치 원칙을 주장하지만(예를 들면 대부분의 침례교회, 그리스도의 제자회), 회중교회라는 명칭은 대개 회중적인 정책을 독특한 특징으로 삼은 교회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 육신에 따른 내 형제들,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겠노라. [본문으로]
- 영국의 선교사(1782~1834). 동인도 회사의 통역으로 중국에서 활동하였으며, 전도와 번역에 힘써 신약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신천 성경》을 완성하였다. [본문으로]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본문으로]
- 알미니안주의는 직접적인 종교경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 신학에 반하는, 이성을 강조하는 개신교 신학의 한 주류이다. 합리성과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를 강조한다. 칼뱅주의신학에서는 예정론(predestination)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보다 강조하지만, 알미니안주의에서는 창세기의 아담 전승을 인용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다 강조하는 성격이 강하다 [본문으로]
-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은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대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의 큰 사랑으로 인하여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자하심 가운데 우리를 향한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요함을 오는 시대들에 보여 주시려 함이니라.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그 분의 작품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 이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어 우리로 그것들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신 것이라. [본문으로]
-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분을 통하여 너희에게 죄들의 사함이 선포되었으며, [본문으로]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으로]
-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 [본문으로]
- 내가 보니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데 그가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