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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11. 20:27피터 럭크만의 주석서/갈라디아서

『다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된다는 것이니, 이것은 또한 내가 부지런히 행한 바라』 (10). 로마서 15:25[1]은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 관해 그들과 한 약속(10)을 지켰음을 보여준다 ( 11:29-30[2] 주석 참조).

 

사도행전 11:29-30 주석

11:29 그 때에 제자들은 각자 능력에 따라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11:30 이를 실행하여 그들이 모은 것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 장로들에게 보내더라.

안티옥에 있는 제자들은 구호금을 모아서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게 보내는데, 성령께서는 이에 관한 두 개의 훌륭한 주석을 로마서 15:25-27[3]과 고린도후서 9:1-2[4]에서 하고 계신다. “relief” (구제)라는 용어는 바로 이 구절에서 나왔다. 그러나 현재 이 말은 법률소송, 소수집단에 대한 정부 보조, 일할 수 없는 사람들 (혹은 너무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는 물질 등과 관련된 말이 되었다. 한편 이것은 성경에서 열두 번째로 언급되는 기근이다. 첫 번째 기근은 창세기 12장에서 발생했다. 열세 번째 기근은 미래에 있을 것이다 ( 16). 그것은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 ( 8:11[5]) 이다. 『각자 능력에 따라』 (29). 그것은 바울 서신에 기록된 방법이다 (고후 9:6-9[6]).

 

 

2:11 그러나 베드로가 안티옥에 왔을 때 그에게 책망할 것이 있기에 내가 그를 면박하였으니

2:12 이는 몇몇 사람이 야고보에게서 오기 전에 그가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자들에게 속한 자들을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나 혼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라.

2:13 다른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위선을 행하니 심지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가더라.

2:14 마침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올바르게 행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처럼 살지 아니하고 이방인들의 방식을 따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도록 강요하느뇨?" 하였노라.

 

11절은 사도행전 15:35[7]에서 일어난 것이다. 구원과 관련된 행위의 문제는 사도행전 15:35이전에 완전히 해결되었으며, 로마 카톨릭, 그리스도의 교회, 제칠일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불교, 도교, 유교, 감독교회, 감리교, 진화론, 공산주의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다. 이제 또 다른 질문이 생기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제는 어떠한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안티옥에 왔을 때…』 (11절). 예루살렘 회의가 있기 몇 년 전에 이미 안티옥[8]에는 그리 스도인들이 있었다 (행 11:26[9]). 더욱이 그들은 회의가 있기 전부터 가르치고 예언했으며 (행 11:28[10]), 이방 인들 가운데 사역을 개척하는 경험도 가졌다 (행 13, 14장). 성경적인 기독교의 중심 도시는 더 이상 예루살 렘이 아니라 안티옥이다.

 

『…내가 그를 면박하였으니』 (11절). 바울이 “사도들의 왕자”를 바로 잡고 있으며, 분명한 말들로 그를 책망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말이다. 첫 번째 “교황” (카톨릭 신자들이 주장하는)은 말을 실수했을 뿐 아니라 (행 10:14[11]), 영적 판단 (마 16:22[12])도 실수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까지 했으며 (마 26:74[13]), 여기서도 교리적인 문제에 있어 이단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베드로의 계승자로 자처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분명히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아야 한다. 다행히 총각으로 사도적인 계승은 베드로가 아닌 바울에게로 이어졌다. 시몬 베드로의 진정한 계승자가 되려면 우선 그의 가족 전체가 할례받은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고전 9:5[14]).

 

『…그가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할례자들에게 속한 자들을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나 혼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라』 (12절). 독자들은 이 분리가 로마서 1:1-2[15]이나 고린도후서 6:14-18[16]의 분리가 아님을 주목하여야 한다. 오늘날 (에큐메니칼 옹호론자들 중에) 성별된 그리스도인을 자기 의로 가득찬 극단적 분리주의자라고 비난하며,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세리와 죄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그들과 식사하는 것조차 거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생각이 비뚤어지고 왜곡된 자들로부터 나왔으며, 그들 중 누구도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그들이 성경을 인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증명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과 함께 식사하셨을 때, 그곳에는 어떠한 “교제”도 없었음을 기억하라 (눅 11:37[17]; 7:36[18]). 바리새인도 회개하고 올바르게 행하면 (요 3장) 그곳에는 교제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당시 에큐메니칼 집단 (마태복음 19-23장을 공부하라) 에 동의하신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전 생애 동안 신중하게 행하셨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혼자 떨어져 있었던 것 (separation)은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덫에 걸린 것이었다 (잠 29:25[19]). 대중의 의견이 그 흉악한 머리를 쳐든 것이다. 이것이 자유주의 자들과 현대주의자들이 성경적 기독교나 <킹제임스 성경>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키는 이유이며,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다 (벧후 2:1-22)

인종 통합론자들은 이 구절을 이용하여 인종 통합이 “기독교”적이고 분리는 비기독교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시 우리는 단지 자신들의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는 육신적이고, 세상적이며, 사람을 기쁘게 하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 속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성경을 인용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편리한대로 성경을 변개시키는 일도 서슴없이 행한다.

본문에 나타난 “통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거듭나고 성경을 사랑하는 자들의 통합이며 (엡 1-3장), 이것이 성경에 있는 유일한 성경적인 통합이다 (고전 12:1-13[20]). UN이나 연방정부의 인종통합을 위한 노력들은 갈라디아서 2장을 인종 통합의 촉진제로 사용하는 영적인 변개자들에 의해 격려되고 있다.

베드로가 사도행전 11:3[21]에서 유대주의자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당했을 때, 그는 그들에게 확실한 알리바이를 제시하였다. 그는 성령의 개입 (행 10:44[22])과 물침례 이전에 성도들에게 직접 성령을 주심으로 사도행전 2:38[23]을 파기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나타난 놀라운 방법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선교 여행 중이 아니었고, 그는 안티옥의 지역교회에서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과 교제 중이었다. 그들이 모두 식탁에 둘러 앉아서 율법에서 금지된 음식들을 함께 먹고 있을 때, 사자가 들어와 베드로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방금 사도행전 11:2[24]의 무리들이 도착했어요. 그들은 모텔(?)에서 밤새 있을 거예요”라고 말해 주었다.

“아니 이럴 수가!”라고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말한다. “여러분들, 죄송하지만 급히 가봐야겠어요. 아주 중요한 전화를 해야 하거든요!” 이 말을 끝내고 베드로가 막 식탁에서 일어나 나가려는데, 개심한 유대인들 몇 명도 베드로와 함께 일어나고 (13절), 심지어 “선한 사람이요 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행 11:24[25])도 일어나 양해를 구한다. 안티옥의 지역 거민들은 서로 바라보며 그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대해 서로 웅성대기 시작한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일로 초조해 하는 거지?”

“무슨 불이라도 났나? 자네는 아직 홍차도 마시다 말았잖아.”

“아무래도 바깥에서 무슨 일이라도 난 모양이네. 무슨 싸움이라도 났나?”

“이럴수가, 나는 시몬 베드로가 생선을 먹다 중간에 남긴 적은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속이 거북한 게 틀림 없을거야.”

베드로는 입을 닦으며 급히 옆 문으로 뛰어나가면서 다음과 같이 혼자 말로 중얼거린다.

“저 유대주의자들이 내가 이방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 왜 내가 여기 왔을까?”

그러나 이러한 그의 행동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킬 뿐이었다. 분명히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데도 (갈 3:27[26]), 교제의 문제에 있어서 그 둘 사이에 차이 (갈 3:27)가 있다고 “복음의 진리” (14절)가 가르치고 있는가? 결코 아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14절). 바울은 그가 가르친 대로 (딤전 5:20[27]) 행동하며, 바울은 그의 은혜의 교리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대리자”를 바로잡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14절은 이런 말이다. “베드로, 당신은 유대인이면서도 이 이방인들을 형제라 부르며 교제를 나누었고, 정통 유대인은 그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생활했소. 그런데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교제를 그만둔 것이오? 이 이방인들에게 다시 정통 유대교가 올바른 것이라고 가르칠 셈이었소?”

갈라디아서 2장의 본문에서 베드로가 이 질문에 대답한 것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만일 그가 사도행전 15:11[28]처럼 대답했더라도, 그 대답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자신을 책망했던 바울을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벧후 3:15[29])라 부른 것으로 봐서, 베드로는 이 일 후에 선한 믿음의 옷으로 갈아입고 그의 행동을 바꾼 것이 틀림없다. [만일 교황이 시몬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들을 따를 수 있다면, 그는 15세기 전에 자신의 권좌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나 바울을 신실하게 따른다고 고백하면서 권좌에 앉을 수 없다. 그리스도나 바울은 모두 면류관을 쓴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졌다.]

RV (1881)와 ASV (1901)는 베드로에게 “책망할 것” (to be blamed)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죄 받을” (stood condemned) 것이 있었다고 말하며, 오리겐, 팜필루스, 유세비우스, 말시온,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은 베드로가 “자기 정죄” (self-condemned)를 받았다고 말하고, NEB는 베드로가 “명백히 틀렸다” (cleary in the wrong)라고 말한다. 벌링거는 본문의 “베드로”가 “게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킹제임스 성경>을 보는 것이 다른 번역본들을 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 베드로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망 받을 만했다. 바울은 베드로가 책망 받을 만했기 때문에 그를 면박하였던 것이다. 다른 역본들이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어떤 다른 해석을 집어 넣더라도, 이것만이 본문 그대로의 의미이며, 올바른 해석이다. “dissimulation” (위선, 13절)은 “hypocricy” (위선)의 고대 영어로, 로마서 12:9[30]에서도 다시 나오며, 그 의미는 명백하다.



[1] 그러나 이제 내가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 그 때에 제자들은 각자 능력에 따라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그들이 모은 것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 장로들에게 보내더라.

[3] 그러나 이제 내가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얼마를 기부하였음이니라. 그들은 진실로 기뻐하였으며 또한 저들에게 빚진 자니, 이는 이방인들이 저들의 영적인 것에 참여하였으면 물질적인 것으로 저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함이라.

[4]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서도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이는 내가 너희 마음의 열성을 알기 때문이라. 내가 너희를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를 "아카야에서는 지난 해부터 준비했노라."고 하였으니, 너희의 열정이 많은 사람을 분발케 하였느니라

[5] 주 하나님이 말하노니, 보라, 그 날들이 오리라. 내가 그 땅에 기근을 보내리니, 빵의 기근도 아니요, 물로 인한 갈증도 아니라, 오직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니라

[6]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넉넉하게 심는 자는 넉넉하게 거둔다는 것이라. 각 사람은 미리 마음 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실 수 있나니, 모든 것을 언제나 너희가 필요한 대로 가질 수 있게 하심으로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시려는 것이라.  (기록되기를 "그가 멀리 흩뜨리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남음이라."함과 같으니

[7] 바울과 바나바도 안티옥에 머물면서 많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전파하니라.

[8] 안타키아는 터키 남부 오론테스 동안에 위치한 도시로 터키와 시리아의 국경 근처에 있다.

[9] 그를 만나 안티옥으로 데리고 오니라. 그리하여 그들이 일년내내 교회와 함께 있으면서 많은 무리를 가르치니, 안티옥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더라.

[10] 그들 가운데서 아가보라고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서 성령으로 알리기를, 온 세상에 큰 흉년이 있을 것이라 하더니 클라우디오 카이사 때에 그렇게 되니라.

[11]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나는 결코 속되거나 불결한 것을 먹은 적이 없나이다."라고 하니

[12] 그때에 베드로가 주를 붙들고 말리기 시작하면서 말하기를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런 일이 결코 주께 있어서는 아니되옵니다."라고 하니

[13] 그가 저주하고 맹세하기 시작하여 말하기를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더라. 그러자 곧 닭이 울더라.

[14] 우리에게 다른 사도들이나 주의 형제들이나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동반할 권리가 없겠느냐?

[15]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성별된 바,  (이는 그분께서 자기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6]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이라.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 것이며, 그들 가운데서 다닐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며 또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들과 딸들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가 말하노라."고 하셨느니라.

[17] 주께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어떤 바리새인이 주께 청하여 자기와 함께 음식을 드시자고 하니 주께서 들어가서 앉으시더라

[18] 그때 바리새인 중에서 한 사람이 자기와 함께 음식을 들자고 주께 청하니 주께서 그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하려고 앉으시더라

[19] 사람을 두려워하면 덫에 걸리나, 주를 신뢰하는 자는 누구나 안전하리라.

[20]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영적인 은사들에 관해 무지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이었을 때는 말 못하는 우상들에게 이끌림을 받은 대로 끌려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예수는 저주 받았다고 말하지 아니하며, 또 성령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라도 예수를 주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다양한 은사들이 있으나 성령은 동일하며 다양한 봉사들이 있으나 주는 동일하며 다양한 역사들이 있으나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동일하니라. 그러나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유익을 위함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들을또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들을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을 분별함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들을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을 통역함을 주시느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그 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느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한 몸에 지체는 많아도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

[21] 말하기를 "당신은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먹었도다." 하니

[22] 베드로가 아직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시더라.

[23]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24] 그 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이 그와 다투며

[25] 이는 그가 선한 사람이요, 또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임이라. 그러므로 많은 무리가 주께 더해지더라.

[26]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27]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책망하여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

[28]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믿으며, 그들도 마찬가지니라."고 하더라.

[29]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인 줄로 생각하라.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가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그렇게 썼고

[30] 사랑에 거짓이 없게 하라. 악을 증오하고 선과 연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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