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11. 20:23ㆍ피터 럭크만의 주석서/갈라디아서
2:1 그리고 나서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디도도 데리고 갔느니라.
2:2 내가 계시를 따라 올라가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전파한 복음을 그들 앞에 제시하였으되, 유명한 사람들에게 따로 전한 것은 어떻게 하든지 내가 달려가야 할 일과 달려갔던 일들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2:4 이는 거짓 형제들이 몰래 들어온 까닭이라.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진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비밀리에 들어와 우리를 노예로 삼고자 함이더라.
2:5 우리가 단 한 시간도 그들에게 복종하지 아니하였던 것은 복음의 진리가 너희와 함께 지속되게 하려는 것이라.
2:6 무언가 되는 것같이 보이는 그 사람들 가운데 (그들이 전에 어떤 사람이었든지 내게는 아무 상관도 없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받아들이지 아니하시며,) 무언가 되는 것같이 보이는 그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조언으로 더해 준 것이 없느니라.
2:7 오히려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자들에게 복음 전함을 맡음과 같이, 내가 무할례자들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을 알았을 때,
2:8 (베드로에게 효과적으로 역사하셔서 할례자들의 사도 직분을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도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이방인들을 위한 직분을 주셨느니라.)
2:9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고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이방인들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자들에게로 감이라.
2:10 다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된다는 것이니 이것은 또한 내가 부지런히 행한 바라.
월리엄스는 우리에게 “성경”을 던져버리고 변개된 RV[1](1881-1884)를 보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변개된 RV를 쓰레기통 (이미 ASV[2], RSV [3]를 던져 넣은)에 던져 버리고 원래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읽어야 한다.
『…내가 바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1절). 본문의 “방문”은 사도행전 15장의 방문이지 만, 이번에는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를 알기 위한 것 (갈 1:18-19[4])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방인 개종자들의 행동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이 문제들은 사도행전 15장 회의[5]의 주제였으 며, 그 문제에 대해 만장일치의 결정이 내려짐으로 공식적으로 해결되었다.
사도행전 15:1-6[6]의 유대주의자들이 오늘날도 감리교, 감독교회, 제 칠일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불교, 유교, 이슬람교, 도교에서 다음의 로마 카톨릭 교리를 가르친다.
1. 구원받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2.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전체적인 요약이며, 만일 당신이 이와 달리 생각한다면, 당신은 겁쟁이거나 위선자 둘 중 하나이다.
본문의 특별한 문제는 할례이며, 바울처럼 (갈 6:12[7])원수를 만들거나 “진영 밖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석가들은 본문의 진리들을 현 시대에 적용하길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벌링거, 헉스터블, 렌돌,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 헤리슨, 레인지, 클라크, 엘리콧, 월리엄스도 결코 본문의 가르침을 감히 오늘날에 적용하지 못한다. 그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고대 언어에 대해서 소리지르고 비난하지만, 어느 누구도 책 판매에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은 현재로 가지고 오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매우 비뚤어진 세대며, 믿음이 없는 자녀임이라.』 (신 32:30).
『내가 계시를 따라 올라가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전파한 복음을 그들 앞에 제시하였으되, 유명한 사람들에게 따로 전한 것은…』 (2절). 주님께서 바울의 마음을 움직여 이 방문을 하게 하셨고, 그는 이방인 개종자 “나와 함께 있던 헬라인 디도” (3절)와 함께 올라갔다. 본문의 전체 내용은 분명하며,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바울은 그의 동료들 (바나바와 디도)과 함께 올라 갔으며, 그들 세 명은 예루살렘의 유명한 세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비밀리에 만난 것은 (“따로”, 2절)유대인의 의식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할례 이상의 일들을 논의했는데, 이는 그들이 사역의 범위에 대해 결정했기 때문이다 (7-10절). 바울은 그가 달리고 있는 경주 (고전 9:26-27[8])의 결과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으나, 만일 바울 자신이 전한 은혜의 복음과 상반되는 교리를 가르치는 유대주의자들로 인해 그의 사역이 무너진다면 그가 “헛되이” 달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바울이 에베소서를 쓰기 13년 전에 있었던 사도행전 13-14장의 사역들 (사도행전 15장 이전인)에서 이미 순수한 은혜를 전파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3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디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어떠한 압력도 가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베드로가 가졌던 행위로 인한 구원이나 침례로 인한 중생 (행 2장)의 생각이 코넬료의 개심 때 (행 10장) 완전히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이는 거짓 형제들이 몰래 들어온 까닭이라 …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4절). 할례 문제로 바울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은 “거짓 형제들”이었으며, 그들은 지역교회로 몰래 들어와 디도에게 할례를 받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이 “거짓 형제들”은 오늘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 마태복음 24:13[9]과 베드로후서 2:22[10]을 인용하거나, 성령께서 이미 인치신 (엡 1:13[11]) 그들을 사도행전 2:38[12]로 끌고 가려는 20세기(21세기) 거짓 형제들의 조상들이다.
본문의 “거짓 형제들”의 정체를 못 본 체하는 학자들은 자신들 중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거나 주석할 수 없는 자임을 스스로 고백할 뿐이다. 만일 이 두 단어에 대해 헬라어 어미 정도나 설명할 수 있다면, 그는 일찌감치 책상에서 글 쓰는 것을 그만두는 편이 낫다. 오리겐에서 잉글리쉬까지 그 어떤 주석가도 독자들이 20세기(21세기) “거짓 형제들”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혼을 인도할 때마다 늘 그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A.D. 51-53년에 모두 죽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은 그때보다 상당히 증가했다. 나는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 클라크, 레인지 더멜로우 헨리, 월리엄스와 새로운 성경 주석가들이 왜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살아계신 성경 말씀들을 공부하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형제들”이 여러 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는” 것을 지켜봐 왔기에 그들을 알아내기 위해 헬라어 문법을 두 주 동안 공부할 필요가 없다.
1. 당신이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그때 갑자기 갈라디아의 “거짓 형제들”이 일어나 “당신들은 잘못 인도하였소. 우리는 매 일요일마다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소. 어머니 교회로 돌아가 그녀로부터 말씀의 순수한 젖을 배우고, 야고보서 2:24[13]을 잊어버리고 에베소서 2:8[14]을 인용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조심하시오.”라고 말한다.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 맞춰보라.
2. 당신이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그때 갑자기 잡지 <파수대>가 “모든 것은 잘되가죠. 지옥은 없고 무덤만 있을 뿐이에요. 당신은 성경공부에 참여해야 하며,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배워야 해요”라고 말한다. 누구이겠는가?
3. 당신이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그때 갑자기 사도행전 2:38[15]의 욕조 속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는 물개가 “당신은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소. 왜냐하면 성령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받는 자들에게만 약속되었기 때문이요. 당신은 잘못 침례 받았소. 로마서 16:16[16]의 “교회들”은 “교회”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당신이 속았기 때문이요.”라고 말한다. 누구이겠는가?
4. 당신이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그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일어나 “당신은 율법을 지켜야만 해요. 만일 당신이 한 계명을 어기면 당신은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될 것이요. 당신이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도덕적인 계명들을 지켜야 하며, 그것들 중 하나는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요.”라고 말한다. 누구이겠는가?
당신이 이들 넷 중 하나라도 맞힌다면, 당신은 더멜로우, 벌링거, 엘리콧, 레인지, 클라크, 월리엄스,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 헉스터블, 헤리슨, 렌돌, 드웨트, 립시우스, 조웨트, 버트만, 알포드보다 한 수 위다. 그들은 A.D. 300년 전에 죽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거짓 형제도 찾아낼 줄 모른다.
바울은 이 “거짓 형제들” (5절)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비록 그 자신이 물침례를 받고, 사도행전11장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물침례를 받았지만, 비록 아나니아가 물침례를 구원과 연결시켰을지라도 (행 22:16[17])바울 자신은 결코 물침례를 구원과 연결시키지 않았다 (고전 1:17[18]). 바울은 그의 생애 중 단 한 번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나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 받은 후 해야 할 일들을 많이 충고하였으나 (엡 5,6장, 골 3,4장, 빌 4장, 고전 1-14장 등), 한 번도 그 행위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그들의 영원히 의롭게 됨과 연관시키지 않았다.
『…복음의 진리가 너희와 함께 지속되게 하려는 것이라.』 (5절). “복음의 진리”는 어떠한 장애가 있더라도 갈라디아인들에게 지속되어야 하며, 만일 바울이 디도의 할례의 문제에 있어 양보했더라면 그것은 갈라디아의 개종자들의 믿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디모데는 이와 다른 상황이었는데 (행 16:3[19]), 이는 그의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고, 그 지역에 사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한 증거로서 그가 할례에 순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라디아인들은 혼혈 유대인이 아니라 바울이 지적한 대로 (갈 1:16[20])순수한 이방인이며 이교도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진리” (5절)는 야고보서 2:24[21], 사도행전 2:38[22], 베드로후서 2:22[23]; 3:17[24], 마태복음 24:13[25], 히브리서 3:14[26]; 6:1-6[27]; 10:26-30[28]등이 교회시대의 신약 구원이 아닌 다른 시대에 관한 관련 구절들임을 아는 것이다. 무식한 자들과 견고하지 못한 자들 (벧후 3:16[29])은 이 성경 구절들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렀으나, 복음의 신실한 사역자들은 견고하게 서서 (엡 6:10[30])그들에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 (갈 2:5[3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성경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연합한 성령의 하나됨 (엡 4:1-3[32])이 아니 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에큐메니칼 운동은 불가능하다. [1075년부터 일어난 에큐메니칼 운동은 그리스도인 보다는 NEA[33] (전미교육협회)와 관련이 있다.]
『무언가 되는 것같이 보이는 그 사람들 가운데 … 무언가 되는 것같이 보이는 그 사람은 나에게 아무것도 조언으로 더해 준 것이 없느니라.』 (6절). 바울, 디도, 바나바는 “빅 쓰리”와 회합을 가졌고, 결론짓기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사역을 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에게 계속 사역을 하기로 했다 (8,9절).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일이 있은 후 결별했고 (행 15:40[34]), 베드로와 요한은 이 일이 있은 후 이방인들에게 사역을 했으나 (벧전 1장, 계 1장), 그 사역의 중점은 정해졌다. 바울의 우선적인 사역은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 (heathen)에게로 가는 것이며, 다른 사도들의 우선적인 사역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 (saints)에게 하는 것이다 (행 21:18[35]). 두 다른 복음은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았으며, 이는 사도행전 15:19[36], 23[37], 28[38]의 결정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오히려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자들에게 … 내가 무할례(할례받지 않은)자들에게 … 할례자(할례받은 사람)들의 사도 직분을 … 이방인들을 위한 직분을 주셨느니라.』 (7,8절). 할례받지 않은 자들에게 전한 복음은 단순히 “할례자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구분한 것이다. 동일한 내용이 전파되었음을 사도행전 15장으로부터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벌링거주의자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계속해서 사도행전 2:38[39]과 야고보서 2장을 전파했다고 추측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야고보서는 사도행전 12장 이전에 기록되었다. [스코필드는 또다시 잘못된 주석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권위가 원래의 “베드로, 야고보, 요한” (마 26:37, 눅 9:28)으로부터 베드로, 요한, 주의 사촌 (로마 카톨릭식 표현, 원래는 주의 형제) 야고보로 옮겨 졌는지를 주목하라. 갈라디아서 1:19 주석을 참조하라. 야고보는 분명히 행위가 아닌 은혜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계시를 받기 이전에 기록했으며, 이것은 야고보서 곳곳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이 서신서는 지옥으로 향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며, 하나님을 멸시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종교적인 의식주의자들이 성경에서 가장 사랑하는 책이 되고 말았다.]
본문은 매우 분명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으며, 명확히 하기 위해 변개시킬 필요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평을 가하기 시작한다.
1. “But neither” (그러나 …까지도 …아니하였으니, 3절)은 “not even” (…라도 …아니하였으니, RV, ASV, 더멜로우)이나, “and yet” (그리고 아직, <강단주석>)이나, “but even” (그러나 심지어, RSV)으로 바꾸어야 한다.
2. “gave place” (5절)는 “yield” (벌링거)나 “did we yield”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로 바뀌어야 한다.
3. “By subjection” (5절)은 “in the way of subjection” (강단주석)나 “with the subjection required of us” (알포드)로 바뀌어야 한다.
4. “whatsoever they were” (그들이 전에 어떤 사람이었든지, 6절)는 “what manner of men they had once been” (렌돌목사)이나, “what they once” (라잇풋)로 바뀌어야 한다.
5. “of” (-가운데, 6절)는 “from” (-로부터)로 바뀌어야 한다 (벌링거, 빈센트, RV).
6. “they who seemed to be somewhat”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 6절)은 “the leaders of the conference” (필립스 역본)이나 “the men of high reputation” (NEB)이나 “reputed as persons of some consequence”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으로 바뀌어야 한다.
7. “in conference” (조언으로, 6절)는 “imparted” (ASV, RV)로 바뀌어야 한다.
8. “wroght effectually” (효과적으로 역사하시어, 8절)는 단순히 “wroght” (ASV)나 “worked” (RSV)나 “entrusted” (NEB)로 되거나 삭제되어야 한다 (필립스 역본).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 쓰레기 같은 것들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겠는가? 바보나 속을 뿐이다.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수용해서 성경을 읽을 수 있겠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학자들의 견해를 모두 반영하여 갈라디아서 2:3-6을 읽어보라.
엘리콧, 올샤우센, 드웨트, 알포드, 라잇풋, 트렌치, 빈센트, 렌돌, 립시우스, 워즈워드, 메이어, <강단주석>이 갈라디아서 1:1-10에 가한 변개들은 하나같이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한 단어도 바꾸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분명하다. <킹제임스 성경>에서 “communicated” (갈 2:2[40], 전하다)는 말의 전달이란 의미뿐 아니라 재정적인 도움 (갈 6:6[41])도 의미함을 주목하라. “conversation”이란 단어도 말의 전달뿐 아니라 “생활 방식” (갈 1:13[42])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성경 단어들의 의미를 19세기 행동 심리학자들의 고어로 바꾸는 것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9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비록 예루살렘에서 기둥같이 여겨질지라도 (로마 카톨릭이 말하는 것처럼 통치자들이 아니라) 그들은 바울에게 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해 줄 말이 없으며 (6절), 바울은 그들을 자신과 동일한 선상에서 대우했으며 (8절) 헤어질 때에는 악수를 하였다 (9절).
본문 9절에서는 “게바”가 올바른 단어인데, 이는 예루살렘 회의의 유대적인 특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변개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들 (바티칸 사본, 시내사본)은 계속해서 게바란 말을 남발하지만 (갈 1:18[43], 2:11[44], 14[45]), 이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이 잘못은 고의적이고 의도적인데 마태복음 16:1이 아람어로 기록되었다는 이론을 지지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마태복음 16:16-18 주석을 참조하라).
[1] 영어 개역본
[2] 미국 표준역
[3] 개역 표준역본
[4] 그리고 나서 삼 년 후에 내가 베드로를 보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 간을 지냈으며 의 아우인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5] 예루살렘 회의, 할례에 관한 질문, 바리새파의 질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베드로의 주장: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사람들을 왜 율법아래 두려고 하는가? 바울과 바나바가 증언함. 야고보의 선언 : 이바인들을 부르심에 대한 약속,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있지 않다.
[6] 유대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형제들을 가르치며 말하기를 "너희가 모세의 율례에 따라 할례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노라."고하더라.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 차이와 논쟁이 일어나니, 형제들이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을 더 선정하여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가도록 하니라. 이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페니케와 사마리아를 경유하며 이방인들의 개종을 설명하니 모든 형제가 크게 기뻐하더라.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을 설명하니라. 그러나 바리새파에서 믿는 몇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그들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니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권고하라."고 하더라. 그때에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 함께 모였는데
[7] 육신에 좋은 모양을 내고자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를 할례받게 하는 것은, 다만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박해받지 않으려는 것뿐이니라.
[8] 그러므로 내가 그처럼 달리되 불확실하게 하지 아니하며, 또 내가 그처럼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아니하노라.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9]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0]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가 스스로 토해 낸 것에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진창 속에서 뒹군다."하였도다.
[11]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 그분을 신뢰하였으니, 또 너희가 그분을 믿고서 약속의 그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니라.
[12]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13] 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
[14]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15]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16]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7] 이제 무엇을 주저하느뇨? 일어나서 침례를 받으라.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너의 죄들을 씻으라.' 고 하더라.
[18]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노라. 말의 지혜로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9] 바울이 이 사람과 함께 가고자 하므로 그 근방에 있는 유대인들 때문에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주니, 이는 그들 모두가 그의 부친이 헬라인인 것을 알고 있음이더라.
[20]나로 하여금 이방 가운데 그를 전파하도록 내 안에 그의 아들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즉시 혈과 육에 의논하지 아니하고
[21] 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
[22]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23]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가 스스로 토해 낸 것에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였도다
[2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런 것을 미리 알았으니 악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자신의 견고한 입장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25]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26] 이는 우리가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가 되기 때문이라.
[27]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의 기초를 떠나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하리니, 죽은 행실들에서 회개함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침례들과 안수함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리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실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 만약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
[28] 이는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받고 난 후에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죄들을 위한 희생제가 남아 있지 아니하고 다만 대적하는 자들을 집어삼킬 심판과 맹렬한 분노를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 모세의 율법을 경시한 자도 자비를 얻지 못하고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인하여 죽었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또 자신을 거룩케 한 그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아니한 것으로 간주하고, 또 그 은혜의 영을 모욕하는 자가 얼마나 더 심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지 생각하라. 이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또 다시 "주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그 분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니
[29] 그의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어 무식한 자들과 견고하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30]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하라.
[31] 우리가 단 한 시간도 그들에게 복종하지 아니하였던 것은 복음의 진리가 너희와 함께 지속되게 하려는 것이라.
[32] 그러므로 주의 죄수 된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되, 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의 띠 안에서 성령의 하나됨을 지키도록 열심히 노력하라.
[33] 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교사, 행정관리자, 유치원·초등학교·중등학교 관련 교육자들로 구성된 미국의 자발적 협회. 세계 최대의 전문 조직이다. 1857년 전미교사협회로 출발해서 1870년 전미교육감협회·미국사범학교협회와 병합되어 전미교육협회(NEA)가 되었다. 회원 수는 1900년에 약 2,000명, 1939년 20만 명이던 것이 20세기 후반에는 공립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모든 교사의 1/2이 훨씬 넘는 100만 명 이상이 되었다. NEA는 그 구조가 복합적이고 조직적이다. 첫째, 학교교육과 회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조직된 다목적 개인자격기구이다. 둘째, NEA는 특수하고 전문적이며 직업적인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세워진 많은 전국적 조직체로 구성되어 있다. 셋째, NEA는 가입된 지역 및 주 교육협회들의 연맹체로 볼 수 있다.
[34]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떠나니, 형제들이 그들의 여정을 하나님의 은혜에 의탁하더라.
[35] 그 다음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가니, 모든 장로가 모였더라.
[36] 그러므로 내 판단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을 우리가 괴롭히지 말고
[37]그들이 자필로 그들 편에 써 보내기를 "사도들과 장로들과 형제들은 안티옥과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38] 이는 다음의 몇 가지 필요한 것들 외에는 너희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이 성령과 우리에게 좋은 것 같으니,
[39]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 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40] 내가 계시를 따라 올라가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전파한 복음을 그들 앞에 제시하였으되, 유명한 사람들에게 따로 전한 것은 어떻게 하든지 내가 달려가야 할 일과 달려갔던 일들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41]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더불어 모든 좋은 것들을 나눠 가져야 할 것이라.
[42] 너희는 내가 유대교에 있었을 때의 내 행실을 들었거니와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으며 황폐시켰고
[43] 그리고 나서 삼 년 후에 내가 베드로를 보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 간을 지냈으며
[44] 그러나 베드로가 안티옥에 왔을 때 그에게 책망할 것이 있기에 내가 그를 면박하였으니
[45] 마침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올바르게 행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에게 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