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3. 21:18ㆍ피터 럭크만의 저서/신약교회사
최초의 조직적이고 공식적인 박해는 비두니아 (Bithynia)에서
젊은 플리니 (Pliny the Younger, A.D. 112)가 총독으로 있던 때에
일어났다.
플리니는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재판정에 끌고와서 그들이
"그리스도인인가" 세 번 물었다.
그들은 이 세 번의 심문에서 언제든지 꽁무니를 뺄 수 있었다.
만약 세 번에 걸쳐 대답이 "그렇다" 라고 나오면 그들에게는 즉시
사형이 언도되었다.
몰론 이 시기 이전에도 로마 황제들(네로와 도미티안 A.D. 56-96)에
의한 돌발적인 박해들이 있었다.
바울은 네로의 치리하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A.D. 90-96).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난은 거의 매번 똑같았다.
그것은 "Odio humani generis"라고 하는 라티어로
뜻은 "인류를 증오한다"는 것이다.
즉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저한 특징은 "서로 사랑하라"는 게명을
고수하는 것이었다기 보다는 "증오문서"를 손에 들고 "증오를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영"은 결여된 채 부정적인 메세지만 전한다는 것이었다.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외치면 그렇게 매도당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은 지옥을 가르치는 반사회적 문제아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이들은 민중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네로 시대의 박해에 관해서는 타키투스, 수에코티우스, 디온 케시우스,
케쿨리안, 세베루스, 로마의 클레멘트 등의 작품에 잘 나와 있다.
그 박해가 얼마나 사악한 것이었던지 배교자인 제롬과 어거스틴은 후에
계시록 13장을 과거사로 믇어 버리고 적그리스도는 이미 왔다가 가버렸다고
주장하면서 (네로) 따라서 계시록 17장의 음녀는 로마 카톨릭이라는 교회국가가
될 수 없다고 발뺌을 한다.
즉 이 음녀는 과거에 있었던 이교도 로마 제국이었다는 왜곡된 주장을
펴는 것이다.
ASV 개정 위원회 (1901년) 책임자였던 필립 샤프는 이러한 배교자들의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동시에 RV위원회 (1881-1884년)의 타이트루트, 홀트, 웨스트 코트 등과
독일 고등비평을 만들어 낸 구원받지 못한 관념론자들 (1700-1900년) 역시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샤프는 드웨트를 회의적인 비평가라고 평했다.
종교개혁 원문을 철저히 반대하는 이제껏 열거한 사람들이 모든 교황,
추기경, 예수회, 아이크혼, 클래리커스, 베트슈타인, 데이빗슨 그리고
구약성경에 대해 엉터리 이론을 펼친 장본인들이 나란히 서서 엉터리 주장에
목소리를 더하고 있다.
더군다나 글쎄 대단한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와필드, 로버트슨, 메이첸 등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