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7. 15:54ㆍ피터 럭크만의 저서/신약교회사
마귀적인 콘스탄틴이 나오기 전 마지막 황제는 디오클레시안이었다.
그는 마니키안이라고 불리는 그룹에 대한 은근한 위협으로 그의 통치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기 군사 모두에게 국가 종교가 섬기는 신들에게 제사지낼 것을 명하는 칙령을 내리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 명령은 A.D. 303년 모든 지역교회 목사들을 투옥하고 모든 교회 건물들을 쓸어버리며 모든 성경 필사본을 다 태우라는 칙령 직후에 내려졌다.
이때 성경을 이 파시스트 같은 괴물 황제에게 넘겨준 자들은 배반자로 불리게 되었고 이 일로 지역교회에서는 또다른 분리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 분리한 그룹은 역사가들에 의해 도나티스트라고 불린다.
우리는 이들에 관해 좀더 살펴 볼 터인데 이는 이들이 교회사에서 볼 때 폴리시안, 알비겐스 그리고 왈덴스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도나티스트에 관해 두드러진 사항은 이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가 유아세례를 받아들였을 때 그 어떤 형태의 유아세례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서 어린아이를 물에 담그거나 혹은 물을 뿌리거나 하여 세례를 주고 심지어는 군인들의 머리 위에 젖은 나무가지를 흔드는 식으로 세례를 주고 있던 그 당시 이를 거부하고 어른이 된 믿는 자들에게만 침례를 주었다.
디오클레시안 치리 때에는 스페인과 영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믿음 때문에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
디오클레시안은 A.D. 303년의 사악한 칙령에 만족치 않고 A.D. 308년 칙령을 내려 국가가 섬기는 신들에게 제사드린 자들은 그 제물이 드려지거나 죽은 후에 그것을 먹어야 하며 모든 도시의 시장에 나오는 물건들은 이교 제단에서 떠온 거룩한 포도주를 뿌린 후에 팔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먹을 경우 그 위에 뿌려진 거룩한 성체성수를 마셔야만 한다는 것을 뜻했다.
이때 순교한 그리스도인은 줄잡아 1만명, 고문 투옥 망명한 그리스도인은 약 2만명에 달한다.
비록 로마 카톨릭 교황 그레고리 13세나 바울 3세가 자행한 살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디오클레시안은 박해자 대열에 들어선 셈이다.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곳곳에 성경을 태우는 모닥불이 있었고 이때 아마도 원본에서 한 두곳 정도만 부족한 상당히 정확한 필사본 수천 개가 불타 없어졌을 것이다.
이때 알렉산드리아 계열 (로마 카톨릭의 예수회 원본)사본은 불태우지 않았다.
반대로 1979년 한 젊은 침례교 설교자가 미 재무성 국세국에 면세자격을 신청하였는데 지방 국장이었던 쿠벨트에 의해 거부당했다.
결국 그는 왜 예수회의 림즈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가를 연방정부에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이 림즈성경은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원문인 것이다.
바로 이 사건이 있은 1979년이 미국 헌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아직 공식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미국 교회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 성경인 예수회 성경을 인정하지 않으면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